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최대 쟁점은‘경제민주화’입니다. 경제민주화의 개념정의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지만 최근 제안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과 대선 후보들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검토해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습니다. 대기업으로부터 상대적 약자인 중소기업과 소비자 보호, 대주주(오너)로부터 상대적 약자인 소수주주보호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라면 반대해서도 않되고 반대할 명분도 없습니다. 문제는 방법입니다.
최근 논쟁의 핵심을 경제민주화를 할지 말지에 둘 경우 사회적 갈등만 커지고 자칫 이념적 논쟁으로 흘러 소모적인 논의만 지속될 수 있습니다. 경제민주화 달성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대기업, 중소기업, 소비자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경제민주화를 달성하는 방법은 크게 세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로 인해 실제로 피해를 당한 중소기업이나 소비자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법정에서 대기업 행위의 위법성을 구체적으로 밝혀 손해를 구제받는 경우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행정당국이 개입하여 대기업의 위법행위를 밝혀 과징금 등의 제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 외형적으로 불공정한 것처럼 보이는 행위가 나타날 경우 행정당국이 이러한 행위의 실질적 불공정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과징금 등으로 제재하는 경우입니다.
셋째, 대기업 구조 자체를 개혁하여 불공정행위가 나타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경우입니다. 또한 중소기업이나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입이 특정 사업을 아예 하지 못하게 하거나 영업활동 자체를 제한하는 경우입니다. 세 번째로 갈수록 규제의 강도와 실효성은 높아지지만 정상적인 기업행위도 규제될 가능성도 그 만큼 커집니다.
첫 번째 방법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논란이 적습니다. 나쁜 짓을 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방법과 세 번째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최근의 경제민주화 법안과 대선 공약들의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 방법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대기업의‘납품단가 후려치기’규제와‘일감 몰아주기’규제입니다. 납품단가를 감액하는 행위와 계열사간 거래행위를‘후려치기’‘몰아주기’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의 용어로 표현하여 마치 당연히 규제되어야 하는 행위들로 오해될 소지가 큽니다. 물론 납품단가를 감액하는 행위와 계열사간 일감 거래가 항상 불공정하다면 그러한 행위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대기업은 하청업체로부터 납품을 받아 완성품을 만들어 글로벌 제품 시장에서 치열하게 가격경쟁을 해야 생존할 수 있으므로 납품단가를 감액하는 것이 정당한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과 거래하는 것이 효율적이듯 계열사간 일감을 거래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이익인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행위들을 규제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납품단가를 감액하는 행위, 재벌 오너가 재산을 빼돌리기 위해 또는 경쟁 중소기업을 퇴출시키기 위해 계열사간 일감거래를 하는 행위는 당연히 규제되어야 합니다. 다만 정상적인 납품단가 인하와 정상적인 일감거래까지‘납품단가 후려치기’와‘일감 몰아주기’로 몰아가며‘당연히’부당한 것으로 취급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세 번째 규제유형에 해당하는 경우가‘가공 의결권’을 규제하기 위한 순환출자 규제와 대기업의‘골목상권 침투’를 막기 위한 규제들입니다. 대기업집단 오너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에 해당하는 의결권보다 더 많은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을 ‘가공 지배권’으로, 동네에 기업형 슈퍼마켓(SSM) 점포를 개점하는 영업활동을 ‘골목상권 침투’로 표현할 경우 그러한 행위 자체가 마치 당연히 비정상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보유한 주식보다 많은 지배권을 행사할 경우 남용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안정된 지배권을 바탕으로 외부 단기 투기자본의 기업파괴적 적대적 기업인수 위협에 대항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는 사업을 수행해 나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단기 주가를 끌어 올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납품단가 쥐어짜기라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단기실적에만 집착할 경우 중소기업과의 장기적 상생은 어려워집니다.
보유한 주식의 수보다 훨씬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 주식’이 외국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자신이 보유한 주식 수 이상의 권한 행사를‘가공’지배권 행사로 부르며 사전에 규제하려고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권한을 남용했을 경우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SSM이 동네에 개점하면서 불공정행위를 하거나 동네 슈퍼마켓을 몰아내기 위해 부당하게 싼 가격에 물건을 판매한다면 당연히 규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개점하고 정상적으로 영업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동네 슈퍼마켓을 보호하기 위해 개점 자체를 못하게 하거나 강제적으로 영업활동을 제한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헌법상 영업활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네의 영세한 슈퍼마켓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SSM에 고용된 동네 아주머니들, 아르바이트 학생, SSM에 납품을 하는 영세 납품업자, 저렴하고 좋은 환경에서 물건을 사고 싶어 하는 소비자 등을 보호하는 것도 역시 중요합니다.
기업의 불공정행위는 당연히 규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업활동이 복잡해 짐에 따라 어디까지가 위법한 불공정행위이고 어디까지가 정상적인 기업활동 인지를 획일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기업이 크거나 기업집단 형태를 취한다고 해서, 기업조직과 행동이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다고 해서‘당연히’규제하려고 할 경우 필연적으로 과잉규제를 초래하며 정상적인 기업활동까지 위축시키게 됩니다. 사전적 행정규제보다 불공정행위를 사후적으로 정확하게 밝혀 피해자들이 신속하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법집행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제도개선과 골목상권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제도도 함께 시행되어야 합니다. 대·중소기업 간 자발적 상생협약을 유도하는 정책들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정책조합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소비자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제민주화 정책 방향입니다.
신석훈 박사(한국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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