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스토리/칼럼노트

경제민주화, 자유로운 토론이 필요합니다.

FKI자유광장 2012. 7. 7. 17:30

경제민주화, 자유로운 토론이 필요합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sshun@keri.org)
* 본 칼럼은 KERI칼럼의 내용을 토대로 재작성된 글입니다


현재 우리사회의 화두는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입니다. 우선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국민들에게 경제민주화가 실현될 새로운 시대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누구도 토를 달아서는 안 될 분위기지요. 경제민주화는 어느덧 우리사회의 성역(聖域)이 되어 버렸습니다. 



갑자기 재계가 정책토론회에서 경제민주화 삭제를 공식적으로 주장했다는 특정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정치권이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오만방자하고’ ‘무식하고’ ‘반인권적’이고 ‘반헌법적’이고 ‘서민은 생각하지 않는 편협한 생각’이고 ‘쓸데없는 짓’이라는 등 온갖 비난이 정치권에서 쏟아졌지요. 세미나에서 도대체 어떤 주장이 나왔기에 정치권에서 이렇게 난리일까요?

비난의 근원지는 지난 6월4일 한국경제연구원 정책토론회 ‘경제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입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필자가 삭제를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었다면 당시 세미나 관련 언론보도에서 무게 있게 다루어 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언론들이 세미나 관련 보도를 했지만 삭제주장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유독 6월5일자 한겨레신문에서만 필자가 헌법 119조 2항을 삭제하자고 주장했고 더 나아가 재계가 삭제를 주장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필자가 정말 제119조 2항 삭제를 주장했을까요? 아니 땐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는 법이지만 가끔 누군가가 작은 불씨에 열심히 부채질을 해 의도적으로 연기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습디다.  



경제민주화, 해석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을 수조차 없는 성역(聖域)인가요?

한 나라의 경제체제는 ‘시장’과 ‘국가’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경제질서는 자유시장체제를 보장하면도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공익을 위해 국가가 개입하여 이를 개선하는 경제체제입니다.

헌법 제119조에서는 이런 체제를 기본원칙 형태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제119조 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고 되어 있지요.

헌법 제119조 1항은 자유시장경제질서를 ‘기본’으로 제시하면서 시장에 문제가 있다면, 공익을 위해 국가는 2항에 근거해 시장에 개입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국가가 언제, 어떻게, 얼마나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판단 기준은 규정되어 있지 않지요. 시장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공익을 위한다는 좋은 취지로 개입하지만 너무 깊숙이 개입하여 오히려 시장기능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의 개입에 대해서는 헌법의 또다른 조항인 제37조 2항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헌법 제37조 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고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제37조 2항에는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고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는 ‘과잉금지의 원칙’ 또는 ‘비례의 원칙’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즉 국가개입의 방법과 한계를 분명히 제시한 거죠.

결국 국가는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등’을 위한다는 취지로 시장에 개입할 수도 있고 제37조2항의 ‘공공복리 등’을 위한 다는 취지로 개입할 수 있습니다. 모두 ‘공익’을 위해 시장에 국가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으로 양자 간에 사실 큰 차이는 없습니다. 또한 개입하는 국가권력의 남용을 통제하는 ‘과잉금지의 원칙’ 또는 ‘비례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도 동일하지만 제37조2항에서는 이러한 원칙들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국가권력이 남용되는 것을 통제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이러한 규정들에 기초해 주로 판단하기 때문에 제119조 2항을 삭제해도 무방하다는 견해들이 있는거에요.

필자는 위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내용을 발제문에서 인용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제119조 2항을 삭제해도 무방하다는 견해가 있다고 소개한 거죠. 이것을 두고 특정 신문은 재계가 헌법 제119조2항 삭제를 주장한 것처럼 왜곡보도를 했습니다. 필자가 이러한 견해를 인용한 이유는 경제력 남용을 막기 위해 정치권의 권한남용 역시 통제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헌법논리 주장입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의 ‘경제민주화’ 논쟁은 필요성에 대해서만 주목하고, 한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경제민주화를 위한다는 명분만 내세우면 어떠한 기업정책도 정당화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도 또 다른 헌법 원칙들에 의해 통제됩니다.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을 정당화하는 만능규범이 아닙니다.



경제민주화 조항은 해석론조차 용납되지 않는 성역(聖域)인가요? 경제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해 경제민주화 조항은 필요하지만, 정치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법치국가 원칙은 인정되어서는 안될까요? 대한민국 헌법은 경제력의 우월적 지위남용을 통제할 뿐 아니라 정치권의 우월적 지위남용도 통제하고 있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입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모색하자는 주장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특정 언론에 모든 정치인들이 휘둘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정치권과 재계 사이 신뢰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헌법이 추구하는 경제민주화 달성이 쉽지 않습니다. 서로 신뢰회복을 위한 소통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기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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