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뽑은 전봇대, 슬그머니 뒷쪽에 심어두는 이름뿐인 규제개혁
앞에서 뽑은 전봇대, 슬그머니 뒷쪽에 심어두는 이름뿐인 규제개혁
- 이선화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한쪽에서는 뽑고 한쪽에서는 세웁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MB정부 인수위 시절에 각종 매체를 떠들썩하게 장식한 규제개혁의 현재 모습입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산업단지 시찰에서 비효율의 상징으로 여겨진 전봇대를 뽑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로 5년동안 처리되지 않았던 전봇대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이는 경제대통령을 강조한 MB정부의 규제개혁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지요.
실제로 MB정부는 규제개혁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로 내세우고 적극적으로 실천했습니다. 대통령 직속자문기구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신설하고 대통령이 직접 규제개혁과제를 챙겼지요. 이렇게 현장중심, 수요자 중심의 규제개선이 강화되면서 기업가 출신 대통령이 가진 장점이 최대한 발휘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강력한 의지와 실천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규제는 줄지 않았습니다. 등록규제의 총 건수는 2009년 11050건에서 현재 13396건으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규제 내용을 살펴보면 새로 만들어지거나 강화된 규제는 2010년 129건에서 2011년 248건, 2012년에는 불과 넉달 만에 211건에 달하고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정부가 역주행하게 된 배경에는 2010년에 천명된 공정사회론이 있습니다. 전경련이 제공한 18대 국회의 규제관련 통계를 분석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정권 전반기에 전봇대 1개의 규제가 제거되는 동안 0.9개가 신설, 강화되었다면 후반기에는 1개당 3.5개가 신설, 강화되었습니다.
보다 특징적인 점은 의원입법이 늘어났다는 겁니다. 정권 전반기에는 규제 강화, 신설에 해당하는 법률안의 77퍼센트가 의원 발의된 안건이었습니다. 이것이 후반기에는 84퍼센트로 늘어났습니다. 정부입법보다 절차가 간소한 의원입법이 주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죠.
출처: 영암뉴스
규제개혁은 특정한 정치성향을 의미하기 전에 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적은 비용이 소요되는 정책대안을 발굴,채택해야 한다는 국정의 최소원리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MB정부는 후반기에 ‘공정사회’라는 정치적 아젠다를 위해 간소한 의원입법으로 규제강화를 했습니다. 정권 초기의 규제개혁 드라이브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입니다.
돌이켜보면 이 정부의 규제개혁을 상징한 ‘전봇대 이전’ 소동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당시에 이미 진짜 문제는 탁상행정이 아니라, 전봇대를 뽑아낸 후, 이를 땅에 묻는데 소요되는 비용부담을 누가 할 것인가라는 지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대통령의 한마디에 이러한 쟁점에 대한 고민 없이 일단 뽑고 보자는 식의 대응은 '규제개혁보다는 이벤트성 민원해소에 가깝다'는 비판이 있었답니다.
* 본 칼럼은 KERI칼럼의 내용을 토대로 재작성된 글입니다. (원문참조 : 아래 로고를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