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스토리/자유광장은 지금!

역사적인 엔고(円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릴 것인가

FKI자유광장 2012. 3. 30. 22:10

 

 

 

 

역사적인 엔고(円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릴 것인가 


2월 중순부터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 등 일 언론들은“ 역사적인 수퍼 엔고 시대 가 끝나가는 변화의 신호가 보인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달러당 75.7 엔까지 치솟았던 엔화가치가 2월 말에는 81엔대까지 돌아섰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떨어지지 않던 엔고가 최근 스스로 고개를 숙인 점이 과거와 다른 모습 이다.

 

한 나라의 화폐 가치는 경제실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따라서 재정위기와 디플레 등으로‘ 최 악의 경제상황에’ 빠져 있는 일본의 엔화는 약세를 보여야 당연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반영하면 엔화는 달러당 90엔 수준은 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국제 외환시장은 엄연히 엔화를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유럽의 재 정난 등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감이 확산되자 안전자산인 엔화를 선호해 되레 강세를 보였던 것이 다. 그렇다면 최근의 엔화 약세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일단은 그리스 구제금융 승인 등으로 유로존 재정위기감이 줄어 주식투자 등 위험자산 선호현상이 되살아난 원인이 크다는 게 전문가 들의 분석이다. 글로벌 유동성 확대로 금융시장에 리스크 회피현상이 완화됐다는 얘기다.

 

어찌됐건 엔화의 추세적인 약세 국면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상황이 호전되고 있 는 것이 분명한 데다 일본은행의 추가금융완화정책 또한 엔저로의 유인을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 다. 또 하나 최근 엔저의 흐름을 주목할 때 등장하는 것은 헤지펀드의 존재다. 지난해 가을 일 정부가 대규모 외환시장개입을 했을 때도 넘지 못했던 달러당 80엔의 벽을 2월 중순에서 하순에 걸쳐 쉽사리 돌파할 수 있었던 것도 헤지펀드의 움직임이 주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당장 헤지펀드의 외환시장의 거래량이 크게 뛰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게 헤지펀드들의‘ 통 화옵션’이라 불리는 거래가 확 늘었다는 사실이다. 닛케이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3년 뒤에 달러 당 100엔으로 달러를 살 수 있는 권리’를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고 한다. 엔저가 계속 이어져 달러당 100엔에 가까워질수록 이 권리의 가격은 오르게 된다. 만약 헤지펀드들의 생각대로 엔저가 계속 간다면 이 권리를 매각해 이익을 취하려 할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 거래에 주목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3년 뒤’에 ‘달러당 100엔’이라고 하는, 현재보다 20엔이나 엔저 를 상정한 것을 권리가격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헤 지펀드들이 지금 내다보고 있는 건 눈앞의 엔저 속도가 아니 라 중장기적인 엔저 전환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일본은행의 추가금융완화조치나 시장개입이 이뤄져도, 그리고 미국에서 좋은 경제지표가 발표되어도, 혹은 유럽의 채무위기가 안정화될 때도 달러당 80엔의 벽 을 뚫지 못했었다. 이는 중장기적인 엔저의 시나리오를 그려 낼‘ 재료’가 없었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경우가 달라졌다. 과거 1995년 4월에 엔-달러 환율이 처음으로 80엔을 돌파 해 당시 최고의 엔고 수준을 기록할 당시 전문가들이 재료 로 거론했던 건 바로‘ 쌍둥이 적자’란 말이었다. 미국의 경 상적자, 그리고 재정적자였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나 이번에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거꾸로 일본의 경상적자, 그리고 재정 적자다. 일 재무성이 2월 8일 발표한 국제수지에 따르면 2011년의 무역수지는 48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그 후에 발표된 경 상흑자 규모도 15년 만에 10조 엔의 벽이 무너져 9조 엔대 로 물러섰다. 그뿐만 아니다. 최근 들어 미국과 유럽의 투자 자들을 중심으로 집중 거론되는 게 일본의 재정적자다. 그 핵심에 있는 게 소비세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다. 노 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소비세 인상에 자신의 정 치생명을 걸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도 처음보다는“ 인상 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는 있지만 문제는 여 당 내에서조차 반대의 목소리가 여전히 거세다는 점이 다. 연립여당인 국민신당은 대놓고“ 소비세 인상에 강하 게 반대하는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천명하고 있 다. 여기에 집권 민주당 내의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대표가 최근 반대의사를 내놓았다. 노다 총리가 소비세인상 법안 제출을 강행하면 자신을 따르는 150명 가량의 국회의원들과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뜻도 밝 혔다. 이대로 가다간 노다 총리가 추진하는 소비세 인상 을 놓고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거가 실시되는, 이른바 정 국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헤지펀드 사이에선“ 일본은 이대로 재정적자를 해결하지 못하고 마는 건 아닌가”라는 우려가 번졌고, 일부 대 형 헤지펀드들은 그 같은 예측을 기정사실화하며 엔저를 상 정한 시나리오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달러당 100엔으로 시장이 움직일 가능성이 있을까. 재미있는 추정치가 있다. 크레디스위스증권 환율부 장인 후카야 고지가 엔 환율과 연동성이 큰 2년짜리 채권으 로 본 미-일 간 금리차의 상관관계를 과거 데이터를 기초로 추산해‘ 금리차가 어느 정도 벌어지면 달러당 100엔의 실현 성이 높아질까’란 것을 뽑아본 수치가 바로 그것이다. 2009 년 이후의 상관관계로 보자면 금리차는 1.03%. 과거 데이터 로 볼 경우 금리차가 1% 정도로 벌어진다면 달러당 100엔 수준까지 엔저가 진행할 가능성이 나타나는 셈이다.

 

다만 일본은행이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모두 당 분간은 초저금리 정책을 고수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FRB 의 밴 버냉키 의장은‘ 적어도 2014년 말까지는’ 저금리정책 을 취할 뜻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후카야 부장은“ 헤지펀 드 사이에선 2014년 말까지 저금리가 이어질 턱이 없다는 분석이 많다”고 강조한다. 20년에 걸쳐 디플레가 이어지고 있는 일본에 비해 미국은 일단 경기전망이 호전만 되면 인플레로 움직이기 쉬운 경제 구조로 여겨지고 있다. FRB의 과거 금융정책 운영을 보더라 도 금융긴축 국면에 들어서면 금리를 올리는 속도는 일본과 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른 게 사실이다.

 

물론 일본 기업들에 있어선 이대로 엔저기조가 이어져만 준다면 엔고에 의한 실적악화에 시달리던 최근 수년의 부진 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다. 특히 해외시장에서 엔고로 인 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자동차업체나 전자업체들에게는 낭 보가 될 것이다. 물론 일본 국내적으로도 일본 기업이 해외 로 이전하는 현상이 줄어들게 되면 청년실업 등의 문제도 해소될 전망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엔저의 배경이 과연 무엇이냐’하는 것이 다. 미 경기가 좋아지고 유럽의 채무위기가 해소됨에 따라 이뤄지는 엔저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그 배경이‘ 재 팬 세일(Japan sale)’에 수반되는 엔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 다. 결코 일본에도 플러스가 될 수 없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1995년에 처음으로 80엔을 넘는 엔고 가 진행된 다음 바로 3년 뒤인 1998년에 걸쳐 147엔대까지 엔저가 진행됐었다. 당시 엔을 파는 이유가 됐던 게 일본의 금융위기였다. 엔저가 된 직후에는 물론 주가가 올랐지만 조 금 지난 뒤에는 일본 시장에서 투자머니가 썰물같이 빠져나 갔던 기억이 새롭다. 최근 엔저에 힘입어 일본의 닛케이지수도 상승세를 타고 있 지만 앞으로 일본의 재정재건에 대한 자세가 후퇴할 경우 그 건 결코‘ 환영받지 못할’ 엔저로 둔갑할 가능성이 크다

 

김현기 (중앙일보ㆍJTBC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