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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을 다 경험하지 않고서 2012년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남보다 한 발 앞서 미래를 준비합니다. 그래서 갈수록 예측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한국기업들도 단기적 경쟁에 몰두하기보다는 이제 장·단기적 예측을 통해 지속가능한 경영을 모색할 때입니다. 한국트렌드연구소는 신간 [2012 메가트렌드 인 코리아]에서 이 같은 원리를 적용해 2012년을 전망해보았습니다. 고령화라는 메가트렌드가 장기적으로 다양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목도할 단기적인 변화로는 도시가 고령자들을 단지 부담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함께 껴안으려는 친 고령화 도시가 새로운 흐름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하는 식입니다. 이 속에 기회가 있고,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면 위기가 옵니다. 친 고령화 도시로의 흐름은 장벽을 없애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확산시킬 것이고 기업들은 이에 대한 준비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2012년의 10대 이슈를 소개하기 전에 잠깐 큰 위기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대내외적 정치적 혼란과 선거, 대만과 중국, 러시아, 미국 등 주변 국가들의 정권교체로 인한 혼돈, 여전한 유럽의 경제위기와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 잠식문제는 심각합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위기는 꾸준하게 진행되어 온 빈부격차의 확대가 세대 간 갈등으로 이어질 만큼 병이 깊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은 언제든 불씨만 생기면 파괴적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마디로 경제가 그 어느 해보다 정치에 연동되고 특히 체제와 시스템에 대한 대중적 분노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해답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2012년입니다. 20세기 역사를 봐도 사회적 갈등이 세대갈등과 겹쳐질 때 폭동과 사회적 혼란이 뒤를 이었습니다. 물론 기업은 이런 사회적 위기를 해결하는 직접적 주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업이 가져야할 의무와 권리에 대해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 기업들 간의 경쟁과 협력에 공정과 공평이라는 시대정신을 투영해야 하고, 상품이나 서비스만을 소비자와의 소통도구로 여겼던 데서 벗어나 기업과 소비자가 인격적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2012년에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갈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2012년의 주요 트렌드 키워드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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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한 위기는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따라서 2012년의 첫 번째 키워드는 소요의 세계화, 분노의 세계화입니다. 2012년은 정치적 갈등이 비즈니스와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독재정권, 부패한 월가, 등록금 같은 2011년의 분노의 대상은 반시민적 행보로 낙인찍힌 기업들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시민은 곧 소비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2012년의 소비자들은 분노에 차 있을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예전보다 더 심각한 반응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좀 더 투명해져야 하며, 의도와 실천을 일치시키려는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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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이라면 소비자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을 기업의 노력은 지금은 통하지 않습니다. 착해 보이는 일을 몇 가지한다고 해서 신뢰가 쉽게 증가하지 않습니다. 금융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그리고 이윤만 챙기려는 기업 전반에 대한 불신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도 성립합니다. 휴머니즘에 대한 과도한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불신의 지뢰밭을 뚫고 신뢰를 얻은 기업의 지위는 더 향상될 것입니다. 좋은 기업, 신뢰할 만한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쏠림현상은 더 심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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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의 일상화는 인간적 삶의 진화를 가져옵니다. 사람들은 개인화된 디지털 도구들과 소프트웨어, SNS, 미디어를 이용해 일상의 매 순간 누군가와의 관계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 경험은 관계 자체에 머물지 않습니다. 디지털 도구가 없을 때에도 했던 다양한 일상적 행위들을 향해 욕구가 옮겨 붙습니다. 우정, 연애, 소비, 거래, 공부, 취직 같은 영역에서도 디지털화한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활용하려는 욕구가 커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바람들은 현실화됩니다. 그러한 도구가 언제나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관계라는 패션을 입는 것입니다. 옷처럼 언제나 몸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모바일 혁명은 이렇게 완성되어 가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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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은 물론이고 정보, 관계, 문제 해결, 즐겁거나 색다른 경험 등이 다이렉트 서비스의 대상 리스트입니다. 이 대상들에 대해 기대와 결과 사이의 시·공간적 거리를 압축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기대 이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이렉트 서비스의 핵심은 복잡성을 줄여주는 데 있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증강현실, 새로운 디스플레이나 디바이스… 뭐든 상관없습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됩니다. 첨단기술이면 뭐하나? 쥐를 잘 잡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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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시크는 ‘저렴하지만 멋진’이라는 상반된 욕구를 결합시키는 추세를 말합니다. 유니클로, 자라, H&M 등 패션분야에서 칩시크는 이미 성숙한 트렌드입니다. 하지만 다른 분야는 어떨까요? 스마트폰, 화장품, 자동차, 집 등 칩시크는 바야흐로 모든 일상으로 확산되려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성장이 예상되는 한국에서 가격경쟁은 장기적인 결사항쟁의 구도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격전쟁의 와중에 특화되어 가는 시장이 바로 칩시크 시장입니다. 하지만 칩시크는 결코 만만한 시장이 아닙니다. 가격을 낮출 수 있는 기술이나 시스템, 노하우가 필요한 데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정확히 찾아내서 제품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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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안에서, 도시의 일상 속에서 자연을 체험하고 신체적, 심리적 위로를 받으려는 욕구가 그린시티의 에너지입니다. ‘도시를 떠날 수 없다면 도시적 삶을 바꾸자’는 것이 이 욕구의 방향입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증가해 온 이 에너지들이 누적되면서 도시와 농업의 접목은 이제 티핑포인트를 넘어서려 하고 있습니다. 얼리어댑터들의 특이한 시도 수준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대중화를 앞두고 있는 것입니다. 시티파머들을 지원하는 정보, 지식, 교육 등이 확산되고 쉽게 식물을 가꿀 수 있는 시스템과 애플리케이션, 종자, 농기구, 새로운 농법 등이 점차 커다란 시장으로 성장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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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한국 나이로 50세가 되는 사람은 1963년생, 59세는 1954년생입니다. 처참했던 한국전쟁 직후 10년 동안 태어난 사람들로,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이들의 수는 총인구의 15.76%, 20대보다 100만 명이나 더 많은 약 756만 명입니다. 50대의 순자산 규모는 2억 9,930만 원으로 모든 세대 중 가장 많습니다. 인구도, 재산도 가장 많은 세대가 50대인 셈입니다. 향후 실버산업과 문화를 이끌어갈 베이비붐 세대, 즉 실버부머는 2012년 한국사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집단이자 연구가 필요한 세대입니다. 실버부머는 한국의 고령화가 어떻게 진행되어 갈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세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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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고령화 도시가 은퇴자 도시쯤일 것이라는 상상은 접어야 합니다. 친고령화 도시의 포인트는 고령자들을 도시적 삶의 주체로 적극 수용하자는 것입니다. 그들을 교외로 나가서 한가한 전원생활이나 즐겨야 할 퇴물 취급하는 일은 그만둬야 합니다. 그들은 도시에 살 것입니다. 도시는 그들을 껴안아야 합니다. 실제로 고령자가 떠나면 도시가 망합니다. 2010년 서울시 인구의 9.25%가 65세 이상이다(92만 8,956명). 현재 50대인 베이비붐 세대는 인구의 15%입니다. 그들은 우리 역사상 가장 부유한 노인세대가 될 것입니다. 만약 은퇴연령에 도달하고 있는 이들 세대가 모두 떠난다면 10년 후쯤 서울시는 황폐화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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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당시, 대표적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2009년에 중국경제가 14%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전혀 달랐습니다. 중국은 2009년 8.7%나 성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도는 6.5%, 인도네시아는 4% 성장했습니다. 세계 경제위기는 오히려 아시아의 역할을 더 강화시켰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지역 중산층의 성장은 괄목할 만합니다. 아시아개발은행(ABD)은 아시아의 중산층 인구가 19억 명이며, 2030년이면 전 세계 구매력의 43%, 무려 32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호주의 연방재무장관은 중국과 아시아의 중산층 소비자들이 향후 10년 간 호주경제의 생명선이라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한국이라고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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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시대에 철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철도가 글로벌화의 새로운 성장 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 철도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접근성이 좋고 안전하며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화물을 운송할 수 있어서 입니다. 또 최근에는 기술개발에 속도가 붙으면서 철도운행이 빠르고 지능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여기에 몇몇 대륙 국가들의 글로벌화 정책과 맞물리면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향후 철도 르네상스를 통해 창출될 시장은 얼마나 될까요? 2015년까지 철도시장 수주규모는 646조 원에 이를 전망입니다(KB투자증권). 선진국들이 사활을 걸고 철도에서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지금, 기술로는 세계 5위권인 한국도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철도 르네상스의 한 축에 도전해야 합니다.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
* 출처 : 월간전경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