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스토리/칼럼노트

위기상황 주시, 금융불안 지속과 실물경제 위축가능성에 대비해야 (김득갑 SERI 연구전문위원)

FKI자유광장 2011. 12. 20. 14:10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가 주변국을 거쳐 유로존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금리(10년 만기)가 위험수위인 7%를 넘나들고 있고,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던 독일 국채마저도 투자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이러다 보니 유로화 붕괴를 우려하는 시각이 늘고, 세계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는 ‘유동성 위기’와 ‘채무불능 위기’에 기인하고 있다. 충분한 경제성장이나 재정긴축을 통해 재정적자를 줄이고 채무를 상환하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유로존의 재정취약국은 그렇지 못하다. 투자자들이 재정 취약국의 국채매입을 꺼리게 되면서 국채발행이 어려워지고 국채금리도 상승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국채발행을 통해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 디폴트를 피하기 위해 EU-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 유로화 가입으로 환율 및 금리정책을 상실한 상태에서 경쟁력마저 약화된 국가는 구제금융 조건으로 추진하는 재정긴축으로 인해 경기가 침체되고 재정이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이는 EU-IMF의 구제금융 지원에도 불구하고 유럽 재정위기가 계속 확산되는 이유다. 유로존 국가들은 무역과 금융에서 서로 강하게 연계되어 있다. 유로존의 역내 무역은 전체 무역의 60%를 상회하고, 유럽 은행들의 대출도 80% 이상이 역내 대출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다 보니 한 나라의 재정위기가 주변국으로 쉽게 전이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발 재정위기가 유로화 위기로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이는 유럽 재정위기의 확산을 차단하려면 회원국 차원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유로존 전체의 공동대응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유럽 재정위기의 관건은 개별국 차원의 위기가 유로존 전체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는 방어막을 얼마나 빨리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10월 26일에 EU 정상회의에서 합의했던 재정위기 해소를 위한 포괄적 대책(그랜드플랜)을 신속히 이행해야 한다. 민간채권단이 갖고 있는 그리스 국채의 50%를 탕감, 이에 따른 손실에도 은행이 생존할 수 있도록 자본을 확충하고, 이 과정에서 예상되는 채권시장 불안을 진정시키는 데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대출여력을 적어도 1조 유로로 증액하는 것을 뜻한다.
 
EU와 유로존 국가들은 2012년부터 그랜드플랜의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하지만 시장불안이 지속되면서 레버리지를 통해 EFSF의 대출여력을 확대하려던 당초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프랑스의 신용등급 하향조정 우려, 중국 및 중동산유국 등 신흥개도국들의 미온적 반응 등이 증액작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독일이 ECB의 최종대부자 역할을 반대하면서 유로존 국가들의 국채투매(본드런)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차단하지 않으면 재정 취약국으로 지목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물론 프랑스, 벨기에 등 중심국마저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로화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국채금리 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이 절실하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발행국채 규모(2조 6,000억 유로)를 고려할 경우, 1조 유로의 EFSF 규모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EFSF는 국채 매입 이외에 은행자본 확충을 지원함은 물론 위기예상 회원국에 선제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문가들은 EFSF의 대출여력이 2조 유로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시장불안은 EFSF의 증액작업 지연, 규모의 한계 등 EFSF의 문제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최종대부자로서 ECB의 역할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정위기 확산을 차단하려면 EFSF의 증액을 서둘러 완료하거나, ECB가 국채매입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하지만 현재 EFSF의 증액작업은 시장이 안정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ECB가 국채 매입을 확대해야 시장불안이 진정되고 EFSF의 증액작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ECB가 국채매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반대를 극복해야 한다. 메르켈 정부는 ECB가 국채매입을 확대할 경우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고, 재정취약국이 긴축과 구조개혁을 등한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ECB의 역할 확대에 반대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유로존 회원국의 경제 및 재정정책을 규율하기 위한 안정화협약의 조기 체결이 중요하다. 유로존의 재정통합을 강화하는 안정화협약이 체결되면 ECB의 국채매입 확대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유럽 재정위기의 해결 실마리를 찾아가는 셈이다.
 
현재로서는 두 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국가들의 위기극복을 위한 최근의 노력을 감안할 경우 첫 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도 커지고있다. 물론, 정치 지도자들이 자국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중요의사결정을 지체할 경우에는 세 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2012년에도 유럽 재정위기는 여전히 세계경제의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재정위기가 해소되지 못할 경우 유로존은 물론 선진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하다. 유로존은 신용경색에 따른 투자와 소비 부진으로 내수가 침체되고 교역이 위축되어 세계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만약 세 번째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유럽 은행들이 해외자금을 본격 회수하게 되면 유럽 자본에 크게 의존해온 신흥국 경제는 타격을 입게 되고, 세계경제의 침체까지 우려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IMF는 국제사회가 공조에 나설 것을 역설하고있다. 유럽 재정위기는 더 이상 유로존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경제의 공동 현안으로 접근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적기 대응에 실패하면 세계경제와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고 한국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기업들은 유럽 재정위기의 진행상황을 예의주시하되, 금융불안 지속과 실물경제 위축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우선, 위기재발에 대비한 대응체제 구축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상황 급변에 대응하기 위해 재무유연성의 확보가 중요하다. 둘째, 저성장 기조하에서도 지속성장이 가능한 경영체질을 갖추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고성장이 예상되는 신흥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신사업의 경쟁력을 조기 확보하는 노력도 가속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기업 구조조정을 M&A 및 역량 확보의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있다. 셋째, 각국의 보호주의정책 강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요구된다. 자국시장과 기업을 보호하고 세수를 확대하기 위한 선진국의 규제강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 연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