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스토리/칼럼노트
북아프리카의 맹주 카다피의 사망과‘포스트(post) 카다피’시대의 전쟁(錢爭)
FKI자유광장
2011. 11. 19. 18:55
박현진
27세 혁명가로 리비아 국가원수에 오르면서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철권통치를 펼쳤던 무 아마르 카다피도 역사의 큰 흐름을 비껴갈 순 없었다. 2009년 유엔총회에 첫 참석해 할당된 연설시간을 75분이나 넘기며“아프리카 1,000년 왕국의 이름으로 서방세계는 아프리카에 72조 7,700억 달러를 보상하라”며 큰 소리를 쳤던 북아프리카의 맹주였던 카다피. 그의 사망에 따 른 역사적·국제정치학적인 의미를 되새겨 볼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글로벌 기업과 열강들은‘포스 트(post) 카다피’시대의 금맥(金脈)을 캐기 위한‘제2의 전쟁’에 돌입했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 될 재건사업과 원유 개발권을 둘러싼 열강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 프랑스 등 주요국은 벌써부터 카다피와 측근의 동결자산 해제 및 자금지원 의사를 경쟁 적으로 밝히고 나섰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한 공습을 주도해 카다피 몰락의‘1등 공 신 국가’인 프랑스와 영국은 유리한 위치에서 전리품 지분을 요구할 전망이다. 반면, 시민혁명과 카다피 타도에 소극적이었던 중국과 러시아는 곤란한 처지에 처했다.
+ ‘글로벌 전쟁(錢爭)’의 개막
카다피 사망 이틀 전인 10월 18일 리비아를 전격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리비아 의 상황을‘석기시대(stone age)’로 묘사했다. 도로, 전기, 수도 등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가 완전 히 망가졌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국제사회의 본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기문 유엔총장은 카다피 사망 직후 성명에서“이제 반목은 잊고 재건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리비아 재건사업 규모에 대해서는 각 기관에 따라 전망치가 다르지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는 10월 21일 기본적인 인프라 건설공사에만 최소 1,200억 달러(137조 원)가 투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마나 중단된 건설공사를 재개하고 수도, 전 기, 도로 등 기본 인프라를 까는 데 드는 비용을 보수적으로 잡은 금액이다. 이는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1,172조 원)의 10%가 넘는 금액이며, 세계 GDP 순위로 30~40위권에 드는 국가의 GDP와 맞먹는 규모다. 재건사업에 투입될 자금 은 국제사회가 동결시킨 카다피와 전 측근의 해외자산을 해제 하고 국제기구 및 개별국가의 지원, 그리고 리비아 원유탐사 권 판매 등 3가지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독일 DPA통신은 이날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NTC) 측 주 장을 인용해 해외 자산동결이 800억~1,500억 달러에 이를 것 이라고 보도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당장 투입이 가능 한 카다피의 해외 자산동결 해제를 놓고 기선잡기에 나섰다.
CNN머니는 미 재무부 통계를 인용해 미 정부가 카다피가 사망하기 직전부터 370억 달러의 해외 리비아 동결자산에 대 한 해제를 시작했으며 이미 7억 달러를 지급했다고 10월 21일 보도했다. 이와 관련 미 재무부 대변인은“우리는 현재 리비 아 새 정부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 세계 각지의 리비아 자산동 결을 해제해 리비아 측에 돌려주기 위해 국무부는 물론 해외 파트너들과 적극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안보 최고대표도 최근“미국이 동의하면 EU는 동결한 리비아 자산들을 즉각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국제기구와 세계 각국도 리비아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빠른 시일 내 에 리비아 경제점검 실사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리비아에 어떤 금융지원이 필요한지 검토를 시작했다. 미국 은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따른 부담감으로 리비아 내 전에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은 유엔과 국제기구를 통해 리비아 지원을 주도해‘몫 챙기기’에 나설 것으로 국제 사회는 내다보고 있다. 사실상 미국의 지지 없이는 국제기구 들이 일사분란하게 리비아 지원에 나서기는 어렵기 때문이 다. 한국도 9월 19일 정부와 민간기업이 각각 100만 달러와 60 만 달러의 구호물자를 NTC 측에 지원한 데 이어 규모를 확대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불붙은 원유 확보전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리비아의 하루 원유 생산량 은 155만 배럴로 이 중 80%를 수출한다. 이탈리아 에니, 프랑 스의 토탈, 영국의 BP 등이 현지에 생산시설을 갖고 있어‘글 로벌 석유 메이저의 각축장’으로 불린다.
이들이 일찌감치 원유 생산시설 확보에 나서는 것은 기존 카다피 정권과 맺은 생산계약이 무효가 되면서 정권을 장악할 NTC 측과 재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 누리 베루인 리비아 국영 석유공사 대표는 10월 20일 카다피 사망으로 원유 생산 정상 화를 위한 노력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밝혀 세계 열강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주요 외신과 경제 전문가들은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각국이 기여한 정도에 따라 전후 복구사업과 석유사업 개발권 이 분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국가는 NATO를 통해 반군의 군사작전을 적극 지원하면 서 각각 2억 유로와 2억 5,000만 파운드를 쏟아 부은 프랑스와 영국이다. 프랑스는 반군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 대가로 리 비아 생산 원유의 35%를 할당받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원유 수입량의 20%를 리비아에서 들여오고 있는 이탈 리아는 이미 8월부터 선수를 쳤다. 이탈리아 최대 석유회사인 에니는 내전 발발 직전까지 리비아의 가장 큰 원유생산시설을 가동해왔다.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교장관은 8월 22일 국영방송에 출연해“에니는 앞으로도 북아프리카에서 1등을 유지할 것”이라며“이미 에니의 기술진을 생산시설 재가동을 위해 리비아 동부로 보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유 생산이 재개되고 리비아가 정치적 안정을 찾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 원유 확보전이 너무 이르다는 지 적도 많다. 글로벌 석유컨설팅업체인 우드매켄지는 보고서에 서“리비아가 내전 이전 수준으로 석유를 생산하려면 3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 희비 교차하는 열강들
9월 1일 파리에서는 리비아 사태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세계 60개국 정부 및 국제기구 관계자들이‘리비아의 친구들’ 이란 이름으로 모였다. 여기에는 카다피 정권과 우호적 관계 를 맺어왔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일하 게 리비아 반군을 인정하지 않았던 중국도 슬그머니 특사를 파견해 뒤늦게 구애작전에 나섰다. 이는 8월 중순 반군 측 석 유회사인 아고코의 압둘잘릴 마유프 대변인이“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와는 별 문제가 없지만 중국, 러시아, 브라질과는 정 치적 이슈가 남아있다”고 밝힌 영향이 컸다.
중국의 복잡한 심경은 현지 언론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고 있 다. 신화통신은 이날 이집트 아흐람정치전략연구소 사에드 엘 라웬디의 발언을 인용해 리비아의 재건과 체제전환이 생각만 큼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프랑스와 영국을 겨냥한 듯 나토는 군사적 임무만 끝낸 채 NTC에 리비아의 재건, 화해, 민주적 체제이전이라는 짐을 맡기고 떠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민주화 바람이 중국 대륙으로까지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카다피의 몰락을 대놓고 환영할 수 없는 처 지다. 중국 정부는 시민혁명 성공을 부각하는 논평을 한 건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도 카다피 정권 시절에 맺은 경제 협력을 비롯한 각종 투자계약이 파기되지 않도록 새 지도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현진
* 출처 : 월간전경련
* 출처 : 월간전경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