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국가경쟁력의 의미
국가경쟁력의 의미
- 김상철 MBC 논설위원
개인적으로 경쟁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쟁이야말로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는 데는 동의한다. 경쟁력이라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쟁력이라는 개념을 이용하면 경제현상을 설명하기 쉬울 때가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2016년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를 평가 대상 61개국 중 29위로 발표했다. 2015년 25위에 비해 4계단이나 떨어졌다. 네 가지의 중요한 분석 대상인 경제성과,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 인프라 가운데 정부 효율성을 제외한 나머지 세 부문에서 다 부진했다고 한다. 경제성과 부문의 순위는 지난해 15위에서 올해 21위로 떨어졌고, 기업 효율성 부문은 37위에서 48위로 처졌다. 정부의 설명은 지난해 성장과 고용이 둔화하면서 경제성과가 저조했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구조조정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하면서 기업 효율성도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국가경쟁력에 대한 발표가 나올 때마다 언론과 정부가 부산을 떠는 것은 매년 봐온 일이다. 순위가 올라가면 정부는 대대적인 홍보를 한다. 반대로 올해처럼 순위가 나빠지기라도 하면 정부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려 들고 언론은 비판을 퍼붓는다.
경쟁이 불가피한 시장에서 경쟁력이란 결국 개별 상품 또는 기업이 국내외에서 갖는 우위를 말한다. 흔히 가격경쟁력과 비가격 경쟁력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한다. 가격경쟁력은 당연히 제조비용과 환율에 의해 결정되며, 국제시장에서의 다른 나라 상품과 비교할 때의 가격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비가격경쟁력은 제품의 품질이나 브랜드, 애프터서비스의 질을 포함해 가격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
개별 상품 또는 개별 기업의 경쟁력과 비교한 국가경쟁력의 의미란 경쟁력을 가진 개별 상품 혹은 경쟁력을 가진 개별 기업들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 여부가 될 것이다. 혹은 그 기반을 갖고 있는지도 포함해서 말할 수 있겠다. 다른 말로 하자면 경제적 측면에서의 국가의 생산성 내지 국민소득 증대 능력과 잠재 성장 능력 등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980년대 까지만 해도 한 나라의 경쟁력을 설명할 때는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자본과 노동만을 봤다고 한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가 한 나라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부존자원과 기업환경, 관련 산업, 국내수요라는 네 가지 요소를 제시했고 좀 더 체계를 갖춘 국가경쟁력 평가가 시작됐다. 경쟁력이 기업의 성패를 설명하는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국가경쟁력 역시 한 국가의 성공과 실패를 설명하는데 어느 정도 유용하다. 세계 시장에서 어떤 나라는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어떤 나라는 실패한다. 마치 기업처럼 국가도 경쟁력을 가진 나라는 성공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국가경쟁력을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우선 실제로는 국가경쟁력이 선진국이라는 말과 동어반복일 때가 많다. IMD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상위에 올라 있는 국가들을 보자. 홍콩, 스위스, 미국, 싱가포르, 스웨덴, 덴마크, 아일랜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캐나다 등이다. 이 가운데 선진국이 아닌 나라는 없다. 물론 선진국의 개념부터 확실한 정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경제개발이 다른 나라보다 앞서면서 소득 수준이 높고 동시에 산업구조가 고도화된 나라면서 정치, 사회 제도, 기술, 교육과 문화가 발달한 나라를 말한다. 선진국은 또 기업의 혁신과 개척 능력이 강하다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 국가경쟁력의 조건과 다를 게 없다.
게다가 평가방법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국제경영개발원은 네 부문을 대상으로 128개의 객관적 자료와 113개의 설문조사에 의존해 국가별 순위를 매긴다. 응답자들의 주관에 좌우되는 설문이 너무 많다. 세계경제포럼에서 하는 국가경쟁력 평가도 마찬가지다. 전체 114개 항목을 조사해 국가경쟁력 순위를 매기는데 이 가운데 3분의 2에 해당하는 항목은 회원국 기업 경영자들의 설문조사로 이뤄진다. 각국 기업 경영자들은 자신의 나라 외에는 다른 나라에 대해선 평가하지 않는다. 기업 경영자들의 성향에 따라 해당 국가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좌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낮다는 말은 실제로는 한국의 기업가가 다른 나라의 경쟁자들에 비해 겁을 더 많이 먹고 있거나 아니면 미래에 대해 더 비관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국가와 기업은 전혀 다른 경제단위다. 경쟁력 개념을 국가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국민경제를 일등부터 꼴찌까지 순서를 매긴다는 것부터 조금 유치한 발상이기도 하다. 게다가 한 나라의 경제적 어려움을 오로지 세계시장에서의 취약한 경쟁력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국가경쟁력의 의미를 인정한다고 해도 그 목표는 결국 우리의 생활 수준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런저런 국가경쟁력 순위발표는 그저 참고하면 된다. 따지고 보면 국가경쟁력은 결국 선진국이 되는 요건과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의 요건은 누가 따로 규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대개 상식으로 알고 있다. 튼튼한 사회안전망과 양질의 공공서비스, 사회구성원들의 타협과 합의를 이끌어낼 신뢰받는 정부, 노동자의 창의와 참여에 기초한 높은 생산성,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존경받는 기업, 이 모두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건이고 동시에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