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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칼럼] 반기문의 메기 효과

FKI자유광장 2016. 6. 3. 16:04


반기문의 메기 효과

- 이용식 문화일보 논설주간


  5일간의 방문으로 정치판을 흔들어 놓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호불호가 선명하게 갈리고 있다. 그가 관훈클럽 간담회를 통해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5월 27~28일 중앙일보)에서는 여야 후보군(群)을 통틀어 압도적 1위였다. 반대로 인터넷 공간에서는 그를 비난하는 댓글들도 봇물 터지듯 했다.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정비례해 지지와 반대도 더 첨예해질 것이다. 정치는 수많은 선택과 결단이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성장과 복지, 경쟁과 평등,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기업과 소비자, 사용자와 종업원, 이 지역과 저 지역, 농업과 공업, 개발과 보존,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북한 압박과 지원, 미국과 중국 등 수많은 기로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하고, 그때마다 어느 한쪽의 환호와 다른 쪽의 원망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인이라면 누구도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 총장에 대한 찬반이 가열되는 것은 그가 현실 정치에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반증이다.

  반 총장이 본인의 말처럼 내년 1월 1일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때 자신의 거취를 본격적으로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고려하면 7개월은 매우 긴 시간이다. 무슨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본인도 그럴 것이다. ‘반기문 대망론’이 자신의 적극적 의지보다는 다른 후보군, 특히 여당 후보군의 사정에 달렸기 때문이다. 물론, 무조건 뛰어들었다가 상황이 신통치 않으면 조력자로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외치(外治)는 반 총장이 맡고, 내치(內治)는 누가 맡는다는 식의 러닝메이트 아이디어도 있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까지 지낸 사람이 그 정도의 안이한 구상으로 일생 동안 쌓아 올린 명예를 건 험난한 정치에 뛰어들지는 의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복잡한 정치 시나리오보다 현시점에서 생각할 문제는 차기 대통령으로서 자격 여부다. 가장 큰 장점은 통일 외교를 가장 잘 관리할 능력을 갖췄다는 점이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 역량이 6.25 전쟁의 와중에 한미동맹을 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듯이, 이제는 통일을 위해 그런 역량이 필요하다.

  그러나 거의 초현실적이라고 할 만큼 복잡한 국내 정치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 현재 72세인 나이도 핸디캡이다. 대학 진학 이후 평생 ‘주류’에서 성장하고 활동했지만, 정작 외교부 장관과 유엔 사무총장은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고 자평했던 노무현 대통령 덕분에 가능했다. 이것은 국민 통합을 위해 장점이 될 수도, 양측으로부터 모두 배척당하는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외교 이외의 일반 국정 현안에 대한 역량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없다. ‘본부 훈령’을 집행하는 외교관의 일과, 자신의 구상을 만들고 실천하는 정치인의 길은 크게 다르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반 총장은 상당 기간 차기 후보군의 선두를 달릴 것이다. 그만큼 국내 정치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개인의 리더십에 의존하던 정치의 시대는 막을 내렸는데, 그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정치는 형성되지 않았다. 큰 정치는 사라지고 작은 정치만 판친다. 안보나 성장 등 인기 없는 것을 과감히 추진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치는 없고, 손쉽게 표를 얻을 수 있는 포퓰리즘이 난무한다. 이런 정치는 국회의원 차원이면 몰라도 대통령 차원에서는 곤란하다. 반 총장의 현재 인기는 이런 상황의 2차 산물일 뿐이다.




  현 단계에서 반 총장의 기여는 다른 데 있다. 정치권, 특히 차기 경쟁자 그룹을 자극하는 역할이다. 반 총장을 비판하면서도 그 장점을 따라잡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차기 대통령은 외교·안보적 식견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 반 총장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떠나 다른 후보군은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내부의 파워게임보다는 큰 정치, 글로벌 이슈 등에 대한 역량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반 총장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기는 아직 이르다. 분명한 것은 반기문 현상은 그 자체로 국내 정치에 긍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그를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기름장어’라고 하는 데, 지금은 정어리 떼가 생존하기 위해 계속 헤엄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메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성장한 이들과 내년에 경쟁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