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 시장경제 원리로 ‘뜨는 동네’의 딜레마를 풀어라!
17세기 산업혁명 이전, 영국에서는 귀족을 뜻하는 중산층인 '젠트리' 계급들이 몇몇 낙후된 도심지역으로 이전해 정착하게 됩니다. 상류층인 젠트리가 진입하자 기존에 거주하던 저소득층 사람들은 주거비용 상승과 함께 거주 환경도 물리적으로 변하면서 점차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게 됐죠. 이런 사회 현상을 사회학자 루스 클래스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 정의했는데요. 최근 한국에도 이 젠트리피케이션이 화두입니다. 그중에서도 서울의 대표 명소인 삼청동, 서촌, 가로수길, 경리단길, 성수동 등이 심각한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시장 원리, 거대 자본에 밀린 영세 상인들
예전에는 이 지역들에 대한 수요가 별로 크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로 예술인이나 영세 상인들이 다수 진입하여 정착해 왔는데요.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 지역들이 명소로 부각되며 인기를 얻자,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거주 비용은 막대해졌고, 그곳을 지켜온 상인들은 거대 자본력을 가진 프랜차이즈 상점들에 밀려나게 됐죠. 상인들로선 기껏 지역 수요를 높여놨더니 자리를 뺏기게 된 격이라, 억울하고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지역 고유의 특색과 멋이 거대 자본에 잠식되고, 소상공인들의 복지가 훼손된다는 판단 하에 각종 규제안을 내놓고 있는데요. 서촌의 경우,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및 카페의 입점을 금지하거나, 각종 임차료 상한 규제책 또한 법적 구속은 없지만 권고사항으로 두고 있습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순기능 개발이 중요
하지만 이런 정부의 방침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시장 원리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판단인데요. 임차인으로선 급등한 임차료가 야속하겠지만, 건물주의 입장에서 임대료 인상은 높은 수요에 따라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려는 재산권 행사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권리 행사를 어떠한 사회적 기준과 잣대로 무조건 규제할 수 없는 것이죠. 또 프랜차이즈 입점 제한이나 임대료 규제와 같은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규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궁극적인 해결책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이미 문제점이 두드러진 지역에 위와 같은 네거티브 규제를 두는 것은 기껏해야 현상 유지가 최선일 겁니다.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서울 인사동 쌈지길
특히, 젠트리피케이션은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무조건 막아야 하는 현상이 아닙니다. 전혀 개발되지 못하고 색을 잃어가던 낙후 지역이 명소가 되고 경제적으로 활성화되는 건 분명한 장점이라 할 수 있죠. 인위적인 재개발 사업의 개입 없이 자연스레 사회·문화적 흐름을 따라 활기를 되찾는 것은 부분적으론 장려할 일 일지도 모릅니다.
과도기에 놓인 젠트리피케이션, 시장 경제 원리가 해답
젠트리피케이션이 야기하는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면서, 이것이 갖는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묘책은 시장 경제 원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 지역들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그곳의 고유한 특색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유동 인구가 늘어났거나 유흥시설이 많아졌다고 해서 지역의 수요가 높아진 게 아니라는 거죠. 따라서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지역 문화의 특색이 거대 자본에 의해 점차 빛을 잃어 간다면, 소비자들도 더 이상 그 지역들을 찾을 이유가 없습니다.
현재 젠트리피케이션은 과도기에 놓인 상태로 일시적인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촉발된 사회적 문제들은 수요가 창출된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임차인과 프랜차이즈 자본들이 단순히 시장의 크기만 보고 진입해 초래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색을 살린 지역 문화 구축으로 시장 확대에 노력할 것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하고
지역 문화를 구축한 미국 ‘브로드웨이’의 사례
장기적으로 예측해 보면, 지역의 수요는 점차 감소할 것이며 다른 지역과 다를 바 없는 특색 없는 시장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시장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역의 건물과 서비스 공급자들은 근시안적 관점에서 벗어나 현재의 이익에 급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부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난 지역의 수요 근간을 파악하고, 건물주가 그에 부응해 소상공인들과 협의책을 마련하도록 도움을 줘야 합니다. 특색을 살려 수요를 잘 유지할 수 있다면, 미국 뉴욕의 우범 지대였던 브루클린과 브로드웨이처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잘 극복하고 좋은 지역 문화를 구축해 긍정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과도기를 겪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은 현재 크고 작은 문제점이 발생해, 보상정책 등 일시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일시적, 단편적 규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죠.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마음과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으로, 지역 시장에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해결책 마련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