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국가부채, 규모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부채, 규모는 문제가 아니다
- 김상철 MBC 논설위원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1초마다 약 158만 원씩 늘어난다고 한다. 2014년 7월 500조 원을 넘어선 이후 2년도 안 돼 100조 원이 또 불어났다. 한편, 가계부채는 현재 1,200조 원을 넘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84%다. 기업 부채 비율은 106%로, 신흥국 중 4번째다. 공공부채와 가계부채, 기업부채까지 이른바 트리플 부채다.
그래도 지표로만 보면 정부는 아직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올해 말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어서지만 이 정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 가운데 5번째로 낮다는 게 그 근거다. OECD 회원국들의 GDP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평균적으로 114%라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수준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경쟁국과 비교해도 그리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점도 있다. 우선 증가속도가 너무 빠르다. 게다가 앞으로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나아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 특히 낮은 출산율과 급격한 고령화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재정위기를 겪은 스페인의 정부 빚은 1980년대 초 GDP대비 20%에도 못 미쳤고 2007년까지만 해도 40%를 밑돌았지만, 지금은 100%에 이른다. 우리도 인구 고령화와 남북통일 같은 충격이 겹치면 재정건전성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재정적자는 흔히 발열(發熱) 현상에 비유된다. 열이 나면 몸의 컨디션이 조금 나빠진다. 물론 일상생활이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치해 두면 큰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위험하기도 하다. 물론 당장 부채가 늘어난다고 해서 재정 긴축을 하자고 얘기할 수도 없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포기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복지정책의 축소도 어렵다. 따지고 보면 균형재정이 어떤 경우에도 최선의 정책인 것도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적자재정이 최선의 정책이 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재정적자의 발생과 국가채무 증가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하회하는 낮은 경제성장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다른 나라의 경험을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세계 각국에서 국가채무가 누적되는 근본적 원인 중의 하나는 경제성장의 둔화다.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세수는 부진해지고 반대로 경기대책으로 재정지출이 확대되기 때문에 재정적자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지금의 부채 수준이 위기의 전조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위기를 예고하는 절대적인 기준 같은 건 따로 없다. 1970년 이후 신흥국이 파산한 사례를 살펴보면 절반은 GDP 대비 부채 비율이 60% 이상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60% 이하였다. 어떤 국가는 GDP 대비 부채 비율이 200%, 심지어는 290%가 되어도 파산하지 않고 버텨내기도 했다. 2007년 말에 민간, 기업, 정부 등 경제 주체를 통틀어 미국의 총부채는 GDP의 350%로, 1929년 대공황 때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다. 결국, 위기 발발을 예측할 수 있는 적절한 비율이란 없다고 하는 것이 옳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가가 돈이 부족해 빚을 지기 시작한 건 오래전부터다. 기록상으로는 기원전 431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그리스의 도시국가들도 전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단기 자금을 빌렸었다고 한다. 국가 파산이라는 것도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선진국들도 대부분이 적어도 한 번씩은 파산했다. 1800년에서 2009년 사이에 대외 부채파산이 250건, 대내 부채 파산이 68건 있었다고 한다. 국가별로 보면 16세기부터 18세기 말 사이에 프랑스는 8번, 스페인은 6번 파산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126번, 아프리카에서는 63번이나 국가 파산이 발생했다. 국가의 붕괴는 결국 거두어들일 수 있는 세금이 지출보다 부족하면 발생한다. 1490년경의 베네치아, 1555년경의 제노바가 그렇다. 특히 스페인은 1500년부터 1900년까지 국가부채 때문에 13번을 파산해 ‘가장 많이 파산한 나라’ 세계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과도한 공공 부채를 해결하는 수단은 8가지다. 세금 인상, 지출 축소, 높은 경제 성장률, 금리 인하, 인플레이션, 전쟁, 외부의 도움, 그리고 파산이다. 이 모든 방법이 여태까지 이용되었고 앞으로도 이용될 것이다. 이 같은 수단들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할지는 당시의 상황 못지않게 국민들의 선택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얼마나 빚을 져야 하는지도 결국은 국민 개개인의 선택 문제다. 원칙적으로 정부의 규모, 재원배분, 재원조달 방안 등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 선택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지도자들을 선출하면서 구체적으로 얼마나 세금을 거두고 어디에 얼마나 지출을 늘릴 것인지 살펴보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한 합의 같은 것은 없다. 정부의 역할이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것이라고만 규정하는 것은 틀린 주장은 아니지만 불충분하다. 머스그레이브(Richard A. Musgrave)는 정부의 역할을 자원배분기능과 소득분배기능, 그리고 경제안정화기능 등 셋으로 규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것도 그 정확한 의미는 정부의 정책이 자원배분과 소득분배, 그리고 경제 안정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 이들 세 기능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뷰캐넌(James M. Buchanan) 교수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경제적 번영을 위한 체제를 갖추는 것과 시장을 통하여 제공되지 못하거나 제공되더라도 완벽하게 제공되지 못하는 재화나 용역을 공급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기능이다. 뷰캐넌의 논의에 따를 경우 정부의 복지 기능은 시장의 결함에 따른 소득분배 불공정의 개선 기능에서 찾아진다. 사회의 안정을 저해할 정도의 불평등은 당연히 개선되어야 하나 퍼주기식 복지는 정부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정적자의 발생 원인은 근본적으로 재정규율의 해이에 따른 정부지출의 증가에 있다. 현실에 있어서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출의 팽창과 재정적자의 발생이 아니고 정부지출의 내용이 낭비적이고 생산성이 낮은데 있다. 국가부채에 대한 논의의 초점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에만 맞추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재정적자의 규모나 위험성을 과장하는 것도, 반대로 문제의 심각성을 아예 외면하는 것도 모두 올바른 인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정적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재정적자가 발생하는 원인과 그 내용이 논의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의 지출이 생산성이 높은 사업에 투입되고, 개별사업이 낭비 없이 추진된다는 전제가 있다면 재정적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충분한 세입이 있어 재정에 여유가 있다고 해도 생산성이 낮은 사업에 정부예산이 계속 투입되면 경제 자체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재정적자는 결국 세출이 세입을 초과한 결과치일 뿐이다. 적자가 발생할 때 그 부족재원을 어떻게 충당하는지 그리고 반대로 흑자가 발생할 때는 그 여유 자금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문제다. 중요한 것은 세출의 규모와 세출의 내역일 뿐이다. 세출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하고 복지에 기여한다면 적자재정이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지만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개인과 기업, 금융기관과 정부가 가진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고 얼마 안 되는 자원을 생산성이 없거나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계속 투입한 데 있다. 흔히 국가는 농민을 도와주고,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육성해야 하고, 여성과 학생 근로자를 지원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지원 대상을 죽 늘어놓다 보면 우리 국민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포함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고 만다.
재정건전성은 한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지켜줄 최후 보루다. 경제가 어렵다 보면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권장하는 여론이 높아진다. 경기활성화, 일자리 창출, 그리고 복지확대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주문하게 된다. 그리고 정부지출을 늘리면 투자가 활성화되어 경기가 나아지리라 주장한다. 하지만 추가 지출을 통한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아담 스미스(A. Smith)는 국가가 빈곤과 절망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면서 그것은 바로 안정적인 정부와 예측 가능한 법률, 그리고 정당한 과세체계의 존재라고 말했다. 쉬운 것 같지만 지금도 이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맞추는 나라는 많지 않다.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