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우 칼럼] 새로운 러다이트 운동
새로운 러다이트 운동
- 이신우 서울경제 논설실장
기원전 약 3,2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하류 지역에서 수메르 문명이 태어났다. 이때 남겨진 ‘길가메시 서사시’는 유대민족 구약성경에서 ‘천지 창조’ 이야기의 모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서사시 가운데 인간 창조 이야기가 꽤나 익살스럽다.
황금시대에 이 세상에는 신들만 존재했다. 신들은 자기네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노동을 해야 했다. 신들이라고 노동이 즐거울 리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신들은 꾀를 냈다. 자기들 대신 노동을 시키기 위해 작은 신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작은 신들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운하 건설을 위해 40일간 끔찍한 노역을 감당해야 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작은 신들이 마침내 삼태기를 내던지고 연장을 부수면서 두목 신의 집에 쳐들어갔다.
작은 신들의 노동 파업에 당황한 큰 신들이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작은 신들을 대신해서 노동을 떠맡을 원시 노동자로 인간을 창조키로 한 것이다. 이후 인간들은 신에게서 부여받은 노동의 임무를 다해야 했다.
신들만큼 영악한 게 인간 아닌가. 노동에 지친 인간들은 이제 자기네를 대신해 노동할 ‘로봇’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계인간을 의미하는 로봇은 1921년 초연된 체코의 카렐 차펙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런데 이 로봇이라는 단어가 의미심장하다. 체코 말로 ‘노동’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로봇이 요즘 들어 인간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전 세계 모든 사업장의 풍경을 바꿔놓을 정도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산업의 연간 생산량은 작년에 2007년 대비 18%가 늘었지만, 종업원 수는 오히려 11% 감소했다. 인간의 노동을 급속도로 대체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로봇 공학에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 기술이 결합하면서 최근에는 미국 사무직 업무의 상당수도 로봇에게 넘어가는 판이다. 단순한 육체노동이 아니라 화이트칼라 두뇌 노동까지 위협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이젠 육체노동자가 아니라 화이트칼라 노동자들로부터 영국 산업혁명 당시의 기계파괴(러다이트) 운동이 촉발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로봇과 인간의 일자리 문제가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물론 산업혁명 이후 기계문명의 발달은 애초의 러다이트 운동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더 많은 일자리를 가져왔다. 이번 로봇 혁명도 결국엔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주장이 반복되는 배경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과연 그럴까.
기계문명은 내연기관 발명 및 관련 기술 발전을 초래하면서 수만 년간 이어져 온 인간이나 가축의 ‘힘’을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초기에는 이에 적응하지 못한 노동자 계급이 탈락하거나 저항하기도 했으나 20세기 들어 대부분의 사회가 국가 차원의 의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해 국민교육에 나섰고 공업혁명이 가져온 새로운 노동 수요에 대처할 수 있다.
덕분에 교육받은 노동자들은 사회의 기술진보를 따라갈 수 있었고 이들이 얻은 새로운 소득은 다시 재화·서비스의 추가 수요를 창출해냈다. 국민교육의 성공은 이처럼 기술과 실업(失業) 간 괴리를 해소하는 밑받침이 됐으며 이후 번영하는 중산층 계급의 출현을 목격하게 됐다.
불행히도 로봇 혁명은 내연기관의 등장과 차원이 다르다. 로봇 기술은 지금 인공지능의 단계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기계문명은 육체노동을 대신하는 것일 뿐 인간의 두뇌 영역까지 침범하는 것은 아니었다. 반면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의 지능 활동으로까지 영역을 넓혀간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에게 남겨진 고유 영역은 어디일까. 일부 로봇공학자들은 일례로 무인자동차의 확산으로 운전자의 일자리가 없어지더라도 대신 무인자동차 연구에 필요한 시스템 공학 전문가의 일자리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 일반 화이트칼라 가운데 과연 그런 시스템 공학자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다고 그런 소리인가.
이대로 가다가는 로봇 공학의 발달로 인간 사회는 창조적 두뇌인 상위 1%와 나머지 99%의 평범한 인간 계층으로 양분될지 모른다. 쓸모 있는 인간과 쓸모없는 인간. 필자도 시스템 공학자가 될 가능성은 제로다. 99%에 끼어들 게 자명하다. 새로운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참이다.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