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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텔부터 냉장고를 부탁해까지, 셰프테이너 전성시대가 위험한 까닭은?

FKI자유광장 2015. 6. 9. 16:09

'삼시세끼'의 차줌마부터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백주부까지. 현재 방송가에는 먹방을 너머 요리하는 쿡방이 대세입니다. 특히, 셰프들이 예능 프로그램과 CF에서 활약하면서 '셰프테이너'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는데요.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쿡방에 열광하는 걸까요? 소셜프렌즈 '탁발' 님이 말하는 쿡방의 인기 요인을 지금 알려드립니다!



요즘 예능은 육아에서 음식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사회 현상으로까지 발전했던 아빠 어디 가는 이제 TV 편성표에서 사라졌다. 아직도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만만치 않은 위세를 보이고 있지만,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어쩐지 이제 육아 예능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빈자리를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쿡방들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아빠 어디 가로 시작된 육아 예능의 바통을 먹방, 쿡방이 이어받을 것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대중의 기호 변화를 미리 알아낼 수만 있다면 아마도 돈방석에 앉을 것이다. 아무튼, 어어 하다 보니 어느샌가 TV 예능은 식당 주방을 지켜야 할 셰프들이 점령하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셰프와는 거리가 먼 '삼시세끼'의 이서진, 셰프를 해도 손색이 없을 것만 같은 차줌마 차승원 등이 환경 조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요즘은 누가 뭐래도 셰프테이너 전성시대다. 사실 셰프테이너라는 신조어가 얼마나 어색한 말인가. 음식을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진지하고도 엄격한 것인데 그것이 엔터테인먼트가 됐다. 어떻게 보면 모순이라 할 수 있는 일이 지금 한국 TV를 장악해가고 있다. 심지어 드라마에도 셰프가 주인공의 직업이 됐고, 쿡방과 전혀 상관없거나 없어야 할 힐링캠프까지도 이런 트렌드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흐름에 대해서 한 칼럼니스트는 ‘게으른 TV, 음식 포르노를 배설하다’라는 대단히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발표한 바 있다. 그의 글에 크게 공감하기에는 힘들었지만 적어도 그 제목만으로도 쿡방시대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던 필자로서는 뜨끔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 칼럼이 놓치고 있는 것은 TV 콘텐츠 생산자들의 게으르고, 자본주의적 동기 외에 그것을 수용하는 소비자 즉 시청자의 측면이었다.


KBS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


한동안 그리고 지금도 시청자들이 육아 예능에 빠졌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대중의 현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배경으로 한국의 대단히 저조하고 우려할 만한 저출산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출산율은 특히 유럽과 비교해 충격적이다. 따로 연구하지 않아도 삼포 세대라는 말 한마디로도 왜 출산율이 이토록 심각하게 낮은지를 설명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김제동의 톡투유 패널 최진기 강사는 흥미로운 통계를 알려주었다. 유럽의 출산율에는 미혼 출산이 기혼출산보다 크다는 것이다. 또한, 유럽 정부가 미혼모에게도 모든 출산에 대한 혜택을 차별 없이 제공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한국사회로서는 정책 면에서나, 사회적 인식에서나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지난해 싱글세 논란을 생각해보면 한숨만 깊어질 뿐이다.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한국의 저출산과 육아 예능의 폭발적 반응 사이에 분명 중요한 상관관계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삼포 세대가 대면하고 있는 현실에는 비정규직의 완고한 벽이 놓여 있고, 그 미래에는 이혼율 증가와 더 먼 미래의 노인빈곤이라는 공포까지 줄지어 서 있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고, 예쁘게 키우고 싶은 본능마저 없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낳고 키우지는 못하지만, 그 대리만족으로 남의 아이를 매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싶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백종원


먹방, 쿡방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 SNS에는 흥미로운 현상이 등장하고 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오직 집밥을 함께 먹기 위해서 SNS에서 연락하고 만나고 있다. 다양한 개인적 동기들이 있지만 대충 추려보면 고독과 경제라는 이유로 집약된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인데 현실적으로 그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 좌절에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바로 쿡방의 셰프들이다. 특히 고급 레스토랑의 레시피를 대폭 간소화시켜서 비슷하게 그 맛을 내게 해주는 백주부 백종원이 최고 인기인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쿡방의 범람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세상은 먹을 것 천지인데도 왜 사람들은 TV에서조차 식탐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것일까? 그 원인은 불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불안해지면 더 먹으려 하는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가정에서 통학하는 학생보다 기숙사생이 야식을 훨씬 더 많이 먹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가정에서 다니는 학생조차 야식을 즐긴다는 것은 함정이다. 전화 한 통이면 달려올 야식집이 그토록 많은 이유는 당연히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가 없는 사회. 더 자유로울 수는 있겠지만, 불안은 그 자유를 압박할 정도로 클 것이다. 그러니 식탐은 커질 수밖에 없는데 사회는 그것에 대단히 우호적이지 않다. 배가 나오면 부러움의 대상인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정반대다. 애고 어른이고 비만은 자기관리를 못 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다. 그러니 불안을 해소할 방법으로, 저출산의 사회가 육아 예능에 사로잡혔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쿡방에 몰두하게 되는 것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셰프테이너 전성시대는 사실 우리 사회의 대단히 슬픈 반영이다. 그래서 셰프 전성시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불안해 그래서 쿡방을 봐! 라고 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쿡방을 보면서 그 요리를 오는 주말쯤에 해먹을 근사한 상상이 오늘의 불안을 잠시나마 마비시킬 수 있다면 TV는 모처럼 웃음 말고 뭔가 다른 것을 시청자에게 주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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