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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칼럼] 다음카카오가 알리바바보다 뭐가 못해서

FKI자유광장 2015. 6. 3. 17:51


다음카카오가 알리바바보다 뭐가 못해서

- 이정재 중앙일보 논설위원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우리 정부가 한국 금융의 사활이 달린 것처럼 고무·장려 중인 분야인데, 워낙 정부 규제가 단단해서 '말 따로 현실 따로' 노는 대표적인 분야이기도 하다. 말로는 정부가 "규제 철폐, 산업 활성화"를 외치지만 현실은 "규제 천국, 산업 고사화"를 부추긴다는 얘기다. 그 단적인 예가 지난 5월 15일 열린 핀테크 학술대회에서 나타났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 대표가 업계 대표로 나왔다. 아마 애초 이 대표를 부른 취지는 우리 핀테크 산업의 현황과 전망, 문제점과 개선점 따위를 '업계의 시각'에서 말해달라는 뜻이었으리라. 물론 알아서 부드럽고 적절하게. 마침 금융 당국의 수장인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참석한 자리였다. 이 대표는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는 준비한 원고를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고 한다. 참석자들의 입을 빌어 그의 말을 통째로 옮겨보면 이렇다.



  "오늘 막말 좀 하겠다. 정말 울고 싶다. 핀테크 기업을 대표해 이 자리에 앉았는데 내가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의 각종 규제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소액의 돈을 보내는 뱅크월렛카카오 서비스 출시에만 무려 2년 반이 걸렸다. 이 서비스를 처음 기획한 건 2012년 3월이었지만 금융 당국의 보안성 심의를 통과하는 데만 1년 반이 걸렸다. 그나마 하루 송금액 10만 원이 고작이었다. 중국의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머니마켓펀드(MMF) 위어바오 잔액이 100조 원인데 경쟁이 되겠느냐.

  한국에 만연한 규제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 핀테크는 힘들다. 금융당국의 보안성 심의를 받는 데만 꼬박 1년 반이 걸려 서비스는 한참 뒤에 나왔다. 거래 1만 건 중 단 한 건의 사고도 나지 말아야 한다는 게 한국의 핀테크 문화다.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언론에 대서 특필되고 곧이어 금융당국이 촘촘한 규제를 덧씌운다. 뒤늦게 규제를 푼다고 하는데 법을 좀 고치고 시행령을 바꿔도 그게 근본적인 대책일지는 잘 모르겠다. (규제에 길들여진) 한국 금융의 마인드를 통째로 바꿔야 한다. 큰 기업인 다음카카오도 규제 때문에 이렇게 힘든데 작은 스타트업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 않으냐. 규제 당국과 언론은 물론 사회 모두에 책임이 있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오죽하면 이 대표가 이런 말을, 그것도 금융 감독 당국 수장의 면전에서 했을까. 하지만 나는 이게 다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대표가 속으로 하고 싶었던 진짜 얘기는 이런 것일 것이다. "정부 규제만 없었다면 마윈보다 내가, 알리바바보다 다음카카오가 잘 나갔을 것이다."



  아마 다른 한국 핀테크 기업의 생각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최근 핀테크 기업의 '한국 엑소더스' 본격화하고 있는 것 아닌가. 5월 초에만 한국NFC·페이게이트를 비롯한 한국 핀테크 업체 5곳이 룩셈부르크 정부의 초청을 받아 룩셈부르크 방문길에 올랐다. 영국·중국·호주·아일랜드·홍콩·싱가포르는 물론 미국 조지아 주 정부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한국 핀테크 업체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싱가포르와 미국 조지아 주 정부는 아예 한국에 핀테크 유치 전담사무소까지 차렸을 정도다. 이들이 보내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IT(정보기술) 강국 한국의 핀테크 업체 기술은 세계적으로 우수하다. 하지만 규제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지 않느냐. 규제 많은 한국에서 왜 생고생하느냐."는 것이다. 본사를 자기들 나라로 옮겨 꿈을 제대로 펼쳐보라는 유혹이다. 안 흔들리고 버티는 게 용할 정도다.

  금융연구원이 며칠 뒤(5월 18일) 낸 보고서도 한국 핀테크 산업의 최대 장애물로 '규제'를 꼽았다. 금융연구원은 “17년 전 한국서 싹튼 핀테크가 금융규제 탓에 싹이 잘렸다"고 했다. 1998년 페이팔 설립 시기에 이미 국내에도 유사한 전자결제 업체가 있었으나 규정 중심의 금융규제 체계로 인해 사장됐다는 것이다. 대안은 역시 규제 완화였다.



  지금도 잘돼있는 지급결제 중심의 '생색용' 핀테크 육성책은 이제 그만 하고 소비자 간의 직접 금융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개념의 P2P 등에 무게를 두고 핀테크 육성 정책을 새로 짜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액센추어에 따르면 글로벌 핀테크 투자 규모는 2013년 41억 달러에서 지난해 122억 달러로 3배가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우리나라 은행의 핀테크 투자는 사실상 전무한 게 현실이다.



  같은 날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방한한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을 만나 한국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요청했다. 마윈은 한국판 알리페이인 '코리아페이'를 출범하겠다며 "한국 정부가 많이 도와달라"고 화답했다. 만약 17년 전, 또는 2년 반 전 당국의 규제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다음카카오의 이석우 대표가 중국 총리 리커창의 요청을 받고 '속으론 거만하지만 겉으론 더 없이 착한 표정으로'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연내에 '차이나페이'를 출범하려고 한다. 중국 정부가 많이 도와달라." 국내에서 잘할 수 있는 기업의 싹을 잘라놓고 엉뚱한 데다 손 내미는 짓, 제발 이번으로 끝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