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컬덕트 ⑩] 세계 시장을 뒤흔들다! 한국의 퍼스트 무버 '삼성전자 보르도 TV'
컬덕트 (Culducts : Culture + Product) : 한국의 IT강국이지만 정작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산 제품은 많지 않습니다. 재조명하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국 제품들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의미에서 ‘한국의 컬덕트’를 연재합니다. 컬덕트는 시대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을 준 제품은 물론, 비록 판매에서 실패를 했더라도 일부 마니아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냈던 제품들도 포함됩니다.
과거 한국의 전자 회사들의 제품은 대부분 일본 제품을 벤치마킹해서 디자인과 기능이 비슷했습니다. 차별점이라면 가격 정도였죠. 즉, 일본 제품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좀 더 저렴한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이런 선입견이 깨진 첫 번째 사례가 있다면 2006년 삼성전자가 발매한 보르도 TV를 꼽을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보르도 TV 덕분에 북미 TV 시장에서 최초로 1위를 차지했고, 이후 10여 년간 TV 업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최대 히트작이었던 보르도 TV가 탄생하던 시기를 돌아보겠습니다.
삼성전자 TV의 여명기, 1970년대~1980년대
삼성전자의 보르도 TV의 역사는 멀리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LG전자의 뒤를 이어 1970년 일본의 산요와 합작으로 TV 생산을 시작합니다. 물론 흑백 TV였죠. 삼성전자가 산요의 도움 없이 독자기술로 TV를 생산한 것은 1973년입니다. 초기에는 LG전자에 비해 크게 뒤처졌지만 1975년 출시한 '이코노 TV'가 큰 히트를 기록하면서 1978년 국내 1위 TV업체로 올라서게 됩니다.
출처 : 삼성 투모로우
컬러 TV가 발매된 것은 1980년 8월에 이르러서입니다. 그전에도 컬러 TV는 생산됐지만 국내에는 컬러방송이 뒤늦게 시작되어 국내 발매도 늦었죠. 그러나 이때까지는 LG나 삼성의 TV는 국내 내수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세계 무대에서는 이미 1968년 '트리니톤 TV'로 세계를 평정한 소니와 높은 기술력의 파나소닉, 샤프 등의 일본 업체들이 주름잡고 있었죠. 일본 전자회사들을 이겨낸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미국, 유럽의 어느 업체도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20년간 일본의 독주시대는 계속됐습니다.
선의의 기술 경쟁으로 디지털 시대에 앞서가다
한국의 TV업체들은 아날로그 시대에는 일본 업체들과 기술 격차가 컸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라는 기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아날로그 기술 중 상당부분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죠. 이때 두각을 나타낸 것이 삼성전자입니다. 반도체와 메모리 기술에 일가견이 있던 삼성은 TV에서도 서서히 기술력을 높이기 시작합니다. 특히, 1998년 미국의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의 발사 장면이 미국 8개 도시에서 삼성전자 TV를 통해 생중계 되며 삼성은 최초의 선도업체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이후에는 평판 TV쪽에 큰 투자를 하며 PDP TV에서 높은 기술력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삼성은 2001년 40인치 PDP를 내놨고, 2002년에는 46인치, 2003년에는 세계 최대 크기의 57인치 PDP 패널을 개발합니다. 이렇게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과감하게 디지털 쪽에 투자했다는 것과 라이벌인 LG전자와의 기술경쟁 덕분이었습니다. 특히 LG전자는 국내 TV 역사를 써왔던 기업답게 삼성전자와의 자존심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선의의 경쟁이 오늘날 TV 업계 세계 1, 2위인 삼성과 LG를 만들어 냈습니다.
세계 TV의 기준이 되다! 보르도 TV의 탄생
2000년대 초에는 다양한 TV 기술이 공존했습니다. 여전히 브라운관 TV도 팔렸지만, 대형 TV는 주로 프로젝션 TV가 인기를 끌었고 비싼 가격의 PDP TV, LCD TV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어떤 방식이 미래에 성공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죠. 삼성은 이 당시 상대적으로 LCD TV에 많은 힘을 기울입니다. LCD TV는 PDP에 비해 비싸고 대형화도 어려웠지만, 발열이 덜하고 전기료가 적게 먹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가옥 특성상 한국인이나 유럽인들은 LCD TV를 선호했습니다.
보르도 TV
삼성은 LCD TV를 디자인하면서 유럽의 감성을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훗날 등장한 모델인 '로마', '보르도', '크리스탈 로즈'등의 LCD모델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모티브를 따오고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보르도 TV의 개발에는 강윤제 프로젝트 리더팀을 중심으로 한 디자이너들의 공이 컸습니다. 그동안 화질과 화면 사이즈에 집착하던 TV를 디자인 중심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보르도 TV의 모티브는 이름처럼 '와인'입니다. 와인글래스에서 영감을 딴 아름다운 스탠드 디자인과 검은색의 몸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역량을 디자인에 집중합니다. 사실 처음 시제품을 만들었을 때, 삼성의 기술팀은 보르도 TV의 두께를 110mm로 다소 두껍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이 요구한 두께는 80mm입니다. 평소라면 디자인 대신에 기술진의 손을 들어줬을 겁니다. 그러나 삼성은 디자인에 베팅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2006년 출시한 보르도 TV는 세계 TV의 기준이 되는 계기가 됩니다.
연속 히트 신드롬! 삼성전자, 업계 리더의 자리로 오르다
보르도 TV는 각종 디자인상을 휩쓸며 엄청나게 팔리기 시작합니다. TV 판매 사상 최단 기간 글로벌 밀리언셀러(100만대 판매)는 물론 2007년까지 무려 600만대가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웁니다. 그 결과 삼성은 세계 시장점유율 14.2%로 업계 1위로 올라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보르도의 디자인은 전 세계 모든 TV 회사에 충격을 줍니다. 주로 실버 색상 위주의 TV 디자인은 보르도 이후로 모두 검은색으로 바뀌고, 모든 TV 회사들이 보르도를 닮은 TV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PDP 위주로 사업을 강화하던 일본 회사들에게는 치명타였습니다. 보르도가 크게 히트하면서 평판형 TV의 미래가 LCD TV로 크게 기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크리스털 로즈 TV(좌)와 커브드 TV(우)
삼성은 보르도의 뒤를 이어 출시한 크리스털 로즈 TV, LED TV 등을 연속히트 시키며 일본 업체들과의 간격을 점점 더 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삼성은 9년 연속 업계 1위를 지켰고, LG와 더불어 세계 평판 TV 점유율 50%에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한국의 TV 회사 두 곳이 세계 1, 2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죠.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 회사들은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소니는 2014년 TV 사업부를 분리하며 패배를 인정했고, 샤프는 TV 사업을 대폭 축소하며 회생불능에 빠졌을 정도입니다.
세계 시장을 흔든 보르도 TV의 성공 비결
보르도의 성공비결은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디자인과 LG와의 선의의 경쟁. 그리고 삼성전자의 VIP센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1998년 윤종용 사장을 주축으로 VIP센터를 만듭니다. VIP센터는 삼성전자의 각기 다른 부서 사람들을 모아 놓은 일종의 협력 센터입니다. 대기업은 규모의 특성상 각자의 부서에서만 제품 개발, 디자인, 생산, 마케팅이 이뤄집니다. 당연히 제품의 일관된 콘셉트나 스토리텔링이 이뤄지기 힘듭니다. VIP센터는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센터입니다. 삼성전자의 주요 인력들이 모여 하나의 제품을 개발부터 디자인, 생산, 판매까지 다양한 협업이 이뤄지고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2008년 보르도 CF
보르도 TV의 개발에는 VIP센터의 역할이 컸습니다. 사실 디자이너들이 아무리 아름다운 제품을 디자인해도 기술진이 개발의 어려움을 내세워 거부한다면 좋은 제품이 탄생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VIP센터를 통해 효과적인 조율이 이뤄졌고, 그 결과 세계 TV 시장을 뒤흔든 명품이 탄생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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