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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권, 지키지 못할 약속 대신 재산정해야

FKI자유광장 2015. 5. 15. 18:12
약속은 지켜져야 약속입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는 2020년 이후의 신(新) 기후체제 출범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해 조만간 유엔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를 두고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정부가 제시한 ‘2020년 배출전망(BAU)’ 대비 30% 감축목표는 업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사실상 달성 불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2030년 감축목표를 제시할 경우, 자칫 국제 사회의 신뢰까지 깨질 수 있어 반드시 배출권 재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국가 신뢰도까지 추락하는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킬 수 있는 제대로 된 약속이 필요합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수정이 불가피한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우리 경제의 현실이 반영된 진짜 약속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잘못 산정된 온실가스 배출전망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전망이 과소산정 되었음은 정확한 수치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배출실적이 배출전망을 지속해서 웃돌고 있기 때문인데요. 배출전망은 과거 감축수준이 미래에도 지속된다는 가정에서 산출된 것으로, 기업의 추가적인 감축노력이 더해지면 배출실적이 배출전망을 항상 밑돌아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배출실적을 들여다보면, 2010년 1천4백만 톤, 2011년 3천1백만 톤, 2012년 2천만 톤 등 계속해서 배출전망을 초과하고 있는데요. 특히, 온실가스 목표관리제 이행 첫해인 2012년에는 예상 배출 총량보다 높은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배출실적이 배출전망을 여전히 초과하고 있어 배출전망 오류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감축목표 달성의 복병, 기술 제약과 정부 정책 변화


202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난관은 또 있습니다. 정부가 감축목표 설정 당시 제시했던 감축방안들이 모두 빠짐없이 이행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인데요. 하지만 주요 감축수단은 기술 제약, 정부 정책 변화 등으로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대표적인 온실가스 감축기술인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기술(CCS)은 2020년 이전 상용화를 전제로 감축수단에 포함되었으나, 안정성 등의 문제로 상용화 시기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또, 대규모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저탄소 에너지원인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필수인데, 정부의 2차 에너지 기본 계획에서 비중이 축소되거나 목표 시점이 늦춰져 감축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이미 철강, 석유화학 등 주요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의 국내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성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에너지 효율화는 수출기업이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항력의 요소로, 이는 그동안 산업계가 에너지 효율화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결과입니다.


주요국들은 경제 여건을 감안한 감축목표 제시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의 상황은 어떠할까요? 주요국들은 일찌감치 자국 경제 여건 등을 고려하여 달성 가능한 수준에서 2020년 이후의 감축목표를 제출했거나 제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26∼28%’ 감축목표를 제출했는데요. 최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석탄의 50% 수준에 불과한 셰일가스 사용이 본격화된 것을 감안한 목표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 여건에 따라 과거 경제 사정을 이유로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했던 사례가 되풀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러시아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25∼30%’ 감축목표를 제출했는데요. 2012년 배출량이 이미 1990년 대비 약 50% 감소한 상태여서 목표 달성에 부담이 없습니다.

일본의 경우, ‘2030년까지 2013년 대비 26%’ 감축목표를 내부적으로 조율 중인데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가동 중단된 원자력 발전 비중을 20%까지 늘려 목표를 달성한다는 방침입니다. 특히, 산업 부문의 감축목표는 가정 부문, 에너지 전환 부문 등과 비교해 낮은 수준을 제시해 산업경쟁력을 고려했습니다.

온실가스 최다 배출국인 중국은 ‘2030년을 전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더이상 늘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요. 이에 따라 2030년까지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달성 가능한 현실적인 감축목표로 국가신뢰 높일 것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다루는 교토의정서가 주요국의 탈퇴로 사실상 와해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각국이 달성하기 힘든 감축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진정한 약속의 의미가 퇴색했기 때문이죠. 새롭게 논의되고 있는 신(新) 기후체제는 이행 불가능한 약속이 아닌 지킬 수 있는 약속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2020년까지의 감축목표에 대한 이행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한 후, 산업구조와 경쟁력을 고려해 실제 달성 가능한 현실적인 수준에서 2020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은 거짓말일 뿐입니다. 신뢰를 높이고 경쟁력을 쌓는 일은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대한 지킬 수 있는 약속으로 지구 환경도 살리고 선진 국가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본 포스팅은 전경련 산업정책팀 한형빈 조사역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