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스토리/칼럼노트

[박진용 칼럼] 스마트공장, 실업, 그리고 미래의 일자리

FKI자유광장 2015. 3. 31. 09:31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이 없을 만큼 작업환경이 빡빡해졌어요.”


  
10년 전쯤이다. 영남 지역에 자리한 대기업 계열 철강사. ERP로 불리는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이 처음 도입되면서 냉연강판 제품을 일정한 크기로 절단해 포장단계로 넘기는 공정을 맡고 있던 한 근로자의 말이다. 하나의 작업이 끝날 때마다 즉시 이를 컴퓨터에 입력하도록 돼 있어 공장 각 부분의 생산계획 및 생산 현황이 일목요연하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공장 고위 관계자는 고무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근로자 입장에선 평소 다소 느슨하던 일 처리가 타이트해졌으니 뾰루통해질 법하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을 듯합니다. ERP 도입 전후 생산성이 최소 30% 이상 높아졌어요.” 참고로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는 기업에서 판매, 구매, 생산, 재고 등은 물론이고 인사, 급여, 회계, 원가 등의 일반 사업관리 업무에 이르기까지 독립적으로 운영돼 오던 부문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통합 관리하는 경영혁신 기법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공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ERP 시스템은 더욱 업그레이드됐고, 여기에 빅데이터(Big Data) 분석 시스템을 추가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공장 관계자는 “빅데이터를 통해 생산 제품의 장단점을 분석, 불량률을 최대한 낮추고, 시장 특성별로, 제품 출시 시기별로 잘 팔리는 강재 종류를 뽑아내는 등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감도 센서(Sensor)를 통해 물건과 물건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사물인터넷(IoT)까지 통합해 독일의 일부 공장처럼 고도로 지능화된 공정을 이뤄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10년 전의 기억을 끄집어낸 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최근 행보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독일의 스마트공장들을 차례로 찾았다. 이달 초 일본을 방문해 “과거사를 직시하라”는 발언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메르켈 총리는 일본 방문에 앞서 독일 지멘스사의 암베르크 공장과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의료 관련 강소(强小)기업인 ‘쿠카(KUKA)로보틱스’의 공장을 잇달아 찾았다. 독일 정부가 추진하는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일본 방문 기간 중 가와사키에 있는 독일 다임러와 일본 미쓰비시 합작 공장을 찾았다. 이 공장 역시 일본판 인더스트리 4.0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지난달 메르켈 총리보다 며칠 앞서 이들 공장을 둘러본 안철수 의원은 이달 초 자신의 웹매거진을 통해 “독일에서는 인더스트리 4.0,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스마트팩토리라 부르는 건데, 이는 굉장히 자동화되고 지능화된 제조업 공정을 가리킨다. 이것의 경쟁력이 참 대단하구나 느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잘하는 분야는 대량생산 기술인데, 독일 공장들은 주문형 (소량) 생산으로 정밀도와 품질이 어마어마해서 그런 제조업은 독일을 따라가기는 힘들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엇이 그의 입을 이처럼 떡 벌어지게 만든 것일까. 독일 암베르크에 있는 지멘스 공장을 간단히 살펴보자. 이 공장의 불량률은 0.0002%에 불과하다. 공장에 설치된 수만 개의 센터가 하루 5,000만 건의 정보를 실시간 수집해 제조 공정마다 판단해 자동으로 작업 지시를 내리고, 생산 과정에서 오류가 있는 제품은 빅데이터를 통해 품질 관리팀에 전달돼 걸려지기 때문이다. 직원 근무시간은 주당 35시간에 불과하지만, 생산공정의 자동화와 정보기술(IT)에 힘입어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한다.




  한마디로 스마트공장은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제조 현장과 결합,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미래형 공장이다. 여기에는 지능형 메모리를 이용한 분산ㆍ자율 제어 생산체계 구축과 사물인터넷(IoT)을 통한 초연결 환경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한 센서와 디바이스, 네트워크 기술, 클라우드 컴퓨터, 빅 데이터 처리 등 관련 기반 기술의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모두가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아이템들이다.


  정부가 스마트공장을 대대적으로 육성키로 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최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제조업 혁신을 위해 2020년까지 공장 1만 개의 스마트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올해 대기업 협력업체 350여 곳을 시작으로 20인 이상 중소ㆍ중견기업 공장의 3분의 1을 단계적으로 스마트화하는 한편, 공장 스마트화에 필요한 제반 기술들을  개발ㆍ 육성키로 했다. 이른바 ‘투 트랙(Two Track) 전략’으로, 계획대로 된다면 신성장 동력의 발굴을 기대할 만하다.




  스마트공장이 구축되면 생산 원자재의 입고 시점부터 완제품 출고까지 매 공정을 실시간 분석해 최적의 가동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만큼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올라간다. 무엇보다 소비자행태 변화로 갈수록 짧아지는 제품의 제조•개발•생산 주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중국과 일본의 협공을 받고 있는 국내 제조업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개별•맞춤형 및 소량 생산 체계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제조업 트렌드에 맞춰 생산체계를 혁신하려면 공장의 스마트화는 피할 수 없다.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전통 제조 강국이 스마트공장을 새로운 국가 어젠더로 내걸고 치열한 선점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하지만 맨 앞의 철강공장 사례에서 보듯 한국은 독일이나 미국 등에 비해 아직 한참 뒤떨어져 있다. 먼저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되는 방대한 데이터 및 이를 분석하는 빅데이터 기술을 보자. 현재 기업의 경영 및 마케팅 영역뿐 아니라 제품 생산 영역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지만, 한국은 글로벌 수준보다 평균 2~3년 뒤처진 것으로 평가된다. 사물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센서(Sensor)로 정보를 확보하고, 이를 시스템에 전송한 뒤 소프트웨어로 처리하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한국은 정보 전송기술만 우수할 뿐, 센서와 소프트웨어 부문은 선진국에 크게 밀리고 있다. 미국의 75%~80%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하지만 정부가 민간과 협력해 우리의 우수한 정보통신 인프라를 활용한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본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앞으로 무인 자동차나 무인 비행기(드론)만이 아니라 자동화 설비와 사물인터넷을 연결해 모든 공정이 자동화된 무인 공장(스마트공장)이 대세가 될 듯하다. 또 스마트공장을 만들고, 관련 기술을 상품화하고, 나아가 스마트공장 자체를 하나의 물건처럼 수출하는 시대가 올 것이 분명하다면 이만한 신성장동력 아이템이 없을 것 같다. 이 분야에서 대기업뿐 아니라 혁신형 중소벤처기업들을 체계적으로 키우고, 창업을 유도한다면 취업을 못 해 사회 진출 첫발부터 ‘루저’로 전락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는 한국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는 전기가 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미래 먹거리 차원과 함께 갈수록 심각해지는 대기업 및 중소ㆍ중견기업 간 일자리 양극화 내지는 격차 해소에도 스마트공장은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한국생산성본부(KPC)가 분석한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정보화 수준과 노동생산성(2013년 기준)은 각각 대기업의 76%와 27%에 그치고 있다. 만일 공장의 스마트화가 이뤄지고 중소ㆍ중견기업의 생산성이 크게 뛴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에게 스마트공장이라는 개념조차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매우 낙관적인 시나리오일 수 있지만, 정부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중소기업의 많은 일터가 더이상 더럽고 힘들고 위협한 3D업종이라는 오명을 벗어 던질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대기업들과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


  왜 그럴까. 현재든 미래든 제조업 성공의 핵심 요인은 ‘사람’이고, 스마트공장은 잘 훈련된 근로자 없이는 운영될 수 없다. 숙련된 근로자와 엔지니어의 조합,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가 합쳐진, 이른바 ‘그레이칼라’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들은 복잡한 데이터를 해석하는 엔지니어링적 역량을 바탕으로 경영진과 한 팀으로 일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다. 이런 브레인들이 근무하는, 깨끗하고 소음 없는 스마트공장이라면 굳이 도심 주거지에서 먼 공단에 자리할 필요조차 없다. 일터가 변함에 따라 근로자의 역할도 바뀌는 만큼 이를 뒷받침해 줄 교육시스템의 변화도 뒤따라야 한다.


  물론 비관적 시나리오도 있다. 스마트공장의 출현으로 공장 운영에 필요한 총노동이 엄청나게 줄어들면서 기존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부가가치가 별로 없는 전통적인 노동집약적 서비스가 고도의 스마트 기술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실업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비숙련 근로자는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브리티시 페트롤리움(BP) 같은 회사처럼 관리직의 경우 절반가량이 실직한다는 무시무시한 통계도 있다.



  이런 측면을 두루 살려보면 스마트공장은 단순한 제조혁신이 아니다.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개인과 사회에는 적지 않은 충격파를 안겨 줄 수 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까지 바꿔 놓고, 산업 사회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패러다임이다. 정부의 스마트공장 프로젝트가 단순히 1만 개의 숫자를 채우는 데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거듭 말하지만, 공장을 가동할 스마트 인력의 키워낼 교육시스템 개편과 함께 앞으로 이 과정에서 밀려날 기존의 단순 노무 인력의 실업대책도 강구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중동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제2 중동 붐’을 언급하면서 “대한민국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중동에 보내라”며 던진 우스갯소리에 ‘지금은 1970년대가 아니다’, ’네가 가라’ 등의 질타가 SNS 공간에서 쏟아졌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청년실업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어쩌면 스마트공장은 이 땅의 젊은이들을 중소ㆍ 중견기업으로 몰려들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현재 대기업 임금의 60% 수준인 중소기업이 매력적인 스마트 일터로 변한다면 왜 청년들이 몰리지 않겠는가. 단순히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중동으로 가라”고 할 때가 아니다. 스마트공장 프로젝트는 지금보다 훨씬 넓고 깊게 구상해야 한다. 작금의 현실과 미래사회의 변화까지 두루 고려하는 세심한 정부 정책이 동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