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스토리/칼럼노트

[일본문화 체험기 ⑥] 한 해의 운을 시험하는 마음으로, 후쿠부쿠로 개봉기

FKI자유광장 2015. 1. 6. 15:00

매년 이맘때가 되면, 저마다 꼭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굳은 의지와 함께 헬스장 1년 정기 회원권을 끊고, 가족들 앞에서 금연을 선언하기도 합니다. 서점에서 손수 다이어리를 골라 첫 페이지에 올 한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적기도 합니다. 물론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각오는 매년 반복되곤 하죠.

 

일본에서는 1월 1일만 되면 찾아오는 기분 좋은 일이 있습니다. 바로 새해의 복주머니인 후쿠부쿠로(ふくぶくろ, 福袋), 소위 럭키백입니다. 새해가 되면, 대부분 상점이 진열대 가장 좋은 자리에 커다란 주머니를 꺼내 놓습니다. 가격은 상점에 따라 1,000엔(1만 원)에서 수만 엔(수십만 원)까지 천차만별인데요. 어떤 것을 고르든 주머니 가격을 훨씬 뛰어넘는 가치를 가진 물건이 들어 있다는 사실. 단,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원칙적으로 비밀입니다. ^^

 

 

 

후쿠부쿠로로 가장 유명한 기업은 바로 애플입니다. 럭키백으로 널리 알려진 애플의 복주머니 가격은 대략 40만 원 정도. 다소 비싸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최소 아이팟에서 최대 맥북 에어까지 누구나 욕심낼만한 물건이 들어 있습니다. 메인 상품 외에도 아이폰 케이스, 보조배터리 등 다양한 액세서리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에, 애플 럭키백의 가치는 80만 원에서 200만 원에 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애플이 새해 첫 영업을 개시하는 1월 2일, 일본 전역의 애플스토어 앞은 후쿠부쿠로를 구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올해 1월 1일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침낭을 비롯한 캠핑용품을 싸들고 온 사람들이 노숙하는 모습이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도 했다죠?

 

 

 

 ▲ 2015년 1월 2일, 일본 내 8개 애플 스토어에는 후쿠부쿠로를 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행렬로 진풍경이 벌어졌다 (출처:일본 마이나비뉴스)

 

올해 일본 애플의 후쿠부쿠로 가격은 3만 6천 엔(약 36만 원, 세금 별도)이었는데요.

 

통상 사람들이 꽝! 이라고 말하는 '아이팟 터치 패키지'가 '아이팟 터치(16GB, 약 2만엔), 이어폰(약 2만엔), 휴대폰 보조배터리(약 1만 5천엔), 애플 TV(약 1만엔),  아이튠즈 카드(1천엔~5만엔)'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모든 게 노트북용 고급 백팩(약 1만 5천엔)에 담겨 제공됩니다. 대충 계산해도 구성품의 가격이 '8만엔(약 80만원)+a'이니 가격만 봐도 이득이죠?

 

'아이팟 터치 패키지' 외에 아이패드 미니, 아이패드 에어 그리고 맥북에어 패키지가 있는데요. 기본 액세서리는 '이어폰(약 2만엔), 방수스피커(약 2만엔), 휴대폰 보조배터리(약 1만 5천엔), 애플 TV(약 1만엔),  아이튠즈 카드(1천엔~5만엔)'로 동일하고 메인 상품만 아이패드 미니 3 16GB(약 4만 2천엔), 아이패드 에어16GB (약 5만 3천엔), 맥북 에어 11인치 128GB(약 8만 9천엔)로 달라집니다.

 

메인 상품만 봐도 본전을 훌쩍 넘게되네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혹시라도 맥북 에어가 걸린다면 그야말로 대박 나는 거죠.

 

일본에서는 애플 외에도 스타벅스, MUJI,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와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후쿠부쿠로의 인기가 높습니다. 인기 브랜드의 후쿠부쿠로는 대부분 1월 2일 오전 중으로 판매가 끝나지요. 하지만 일본에 있는 거의 모든 상점에서 후쿠부쿠로를 판매하기 때문에, 저처럼 게으른 소비자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비인기 후쿠부쿠로를) 살 수 있습니다.

 

저는 비교적 한산한(?) 1월 3일 오전에 후쿠부쿠로를 사기 위해 하라주쿠로 향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후쿠부쿠로의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지만, 마네킹을 통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넌지시 알려주는 상점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브랜드의 신발을 취급하는 멀티샵에서는 미네통카 신발 3켤레에 1만 엔(약 10만 원)짜리 후쿠부쿠로를 팔고 있었습니다. 정말 매력적인 조건이었지만, 나중에 한국까지 들고 갈 자신이 없어서 저는 고민 끝에 구입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제가 고른 후쿠부쿠로는 바로 이것!!

 

 

제법 스타일이 괜찮은 ‘벤 데이비스’라는 브랜드에서 파는 후쿠부쿠로입니다. 빨간 주머니는 1만엔(약 10만 원), 검정 주머니는 2만 엔(약 20만 원)짜리 상품인데요. 사실 저는 반쯤 재미로 사는 거라 싼 걸 사고 싶었으나, 빨간 주머니는 제게 맞는 사이즈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검정 주머니를 골랐습니다. (아무래도 옷은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서 주머니 밖에 구성품 사이즈를 표시해 둡니다) 사기 전엔 별생각 없었는데, 막상 들어보니 꽤 묵직한 것이 저를 조금 설레게 하더군요.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바로 집으로 와서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두둥!!

 

 

 

자켓과 바지, 긴팔 후드티와 반팔 티셔츠, 반팔셔츠에 모자까지 내용 구성이 매우 알차네요.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격을 확인해보니 약 5만엔(약 50만원) 정도 되더군요. 아쉽게도 바지는 사이즈가 커서 입지 못할 것 같지만 이 정도면 꽤 기분 좋은 쇼핑인 것 같습니다. 처음엔 혹시나 신년 이벤트를 빙자한 재고처리 마케팅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생각보다 제품의 디자인이나 질이 좋아 깜짝 놀랐습니다.

 

연초 일본에서는 후쿠부쿠로 뿐 아니라, 신년맞이 대규모 세일이 진행됩니다. 때문에 소비자들이 기분좋게 지갑을 열면서 한 해를 시작하지요. 그뿐만 아니라 후쿠부쿠로 내용품 중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품을 재판매하는 중고, 옥션 온라인 거래도 활발해진다고 하는데요. 여러모로 일본의 연초는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나 영국의 박싱데이 못지 않은 좋은 쇼핑 찬스인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한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후쿠부쿠로 구매대행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다고 하는데요. 자유광장 독자분들도 2016년에는 설레고 기분 좋은 후쿠부쿠로 쇼핑을 한번 경험해 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