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재밌는 일식 테이블 매너, 그 내용은?
러시아인을 만날 때면 일식당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식당이 그네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서 일본식 레스토랑(스시바)은 자리가 없어서 대기손님이 줄을 설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인기 외식 코스입니다. 특히 수도 모스크바의 경우 비즈니스 미팅장소로 일반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40대 이하 젊은 층에게 스시바는 패밀리 레스토랑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이미지투데이)
이러한 성향이 있는 러시아인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저도 일식 테이블 매너에 대해 자연스레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미팅 때 테이블 매너를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초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비단 러시아인들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외국인들을 만날 때에도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일식 테이블 매너는 복잡하면서도 재미있는 것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게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일식 테이블 매너의 상당수는 젓가락과 관련된 것입니다. 젓가락의 올바른 사용은 음식을 만든이에 대한 예의라고 여길 정도인데요.
일식 테이블 매너에는 젓가락과 관련된 부분이 꽤 세밀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일단 식단에 나오는 대부분의 음식은 젓가락을 활용해 먹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어색해 보일지 모르지만 국을 먹을 때도 젓가락을 이용합니다. 일본 현지에서는 (덮밥 류를 제외하면)별도로 요청하지 않는 한 숟가락이나 포크 등은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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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일본 테이블 매너는 식탁 위 젓가락 위치부터 우리네 풍습과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젓가락을 잡는 상단부 쪽이 먹는 사람 쪽을 향하도록 아라비아 숫자 1이 되게 놓지만 일본식 젓가락의 식탁 위 기본셋팅은 한일(一)자입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젓가락 상단 부분을 잡고 음식을 짚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일본인들은 중단 아랫부분을 잡고 음식을 먹는 것이 다소간의 차이입니다.
일반적으로 일식당에서는 개인이 먹는 용도의 젓가락과 음식을 퍼오는 젓가락을 구분해서 놓습니다. 자신의 입에 들어갔던 젓가락으로 공통 음식을 만지는 것 자체를 터부시 합니다. 부득이 음식을 퍼오는 젓가락이 없을 경우 개인 젓가락을 거꾸로 해서 음식을 가져와야 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술잔을 돌리는 풍습도 일본에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번거로워 보일 수 있는 풍습이지만 이는 개인 음식과 공통음식을 구분하는 서양식 테이블 매너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매너입니다.
기타 일식 테이블 매너에서 젓가락과 관련된 몇 가지 알아둘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을 때 젓가락 받침 위에 올려 놓아야 한다.
- 젓가락질이 어색하다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찍어 먹거나 옮겨서는 안 된다.
- 젓가락을 바르게 쥐지 않고 움켜쥐는 것은 상대방(일본인)에게 위협의 의미가 된다.
2. 우리식 테이블 매너에서도 음식을 뒤적거리는 것을 일반적인 비매너로 규정하고 있듯이 일식에서도 이는 유효합니다. 식탁에 나온 요리의 모양을 해치지 않으며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먹는 것이 일반적인 매너입니다.
조금 더 세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일본에서는 음식도 작품이라는 문화가 존재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장인)가 세심하게 신경 써서 내놓은 음식의 모양을 망치는 행동, 즉 음식을 이리저리 휘젓거나 섞어서 먹는 행위는 그리 보기 좋은 행동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점으로 개인 접시에 여러 가지 음식을 동시에 놓고 먹는 것도 터부시 됩니다. 개인 접시에는 한번에 한 가지 종류의 음식을 놓고 먹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밥 한 숟가락 입에 물고 동시에 여러 반찬을 집어 먹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일식 테이블 매너에서는 여러 요리(반찬)를 동시에 먹는 것은 피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한번에 한 가지씩 먹는 것이 예절입니다.
3.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 적당한 양의 주류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일본 문화에도 보편적인 풍경입니다. 다만 우리네 주도와 일본식 주도 사이의 외형상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첨잔의 유무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잔이 완전히 비워지면 술을 따르고 첨잔을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문화가 있지만 일본식 주도는 첨잔이 일반적입니다. 술자리 상대의 잔이 완전히 채워져 있지 않으면 다른 이가 알아서 가득 채워주는 것이 예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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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 등은 술잔의 8부 정도를 따르며 맥주의 경우 9부 정도를 따라야 합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잔에 술병입구를 대지 않고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맥주의 경우 거품이 넘치지 않게 천천히 따르는 것이 기본이며 맛과 모양을 위해 거품비율을 30% 정도로 맞추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4. 일식 테이블 매너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테이블 매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먹을 수 있는 크기만큼만 잘라서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입안 한가득’ 음식을 밀어 넣는 것은 그네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풍경이 아닙니다. 특히 칼이나 젓가락이 아닌 이빨로 음식을 잘라 나눠 먹는 모습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5. 일식당에 가면 거의 예외 없이 물수건(데시보리)을 내놓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차갑게 해서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손을 닦기 위한 용도로 내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인들(남성의 경우)은 이를 이용해 얼굴을 닦기도 하는 등 딱히 사용하는 데 특정한 제약은 없습니다.
동네 가게가 아닌 어느 정도 규모의 일식당에서는 대체로 물수건이 별도의 그릇에 올려져 나옵니다. 유의할 점은 물수건 사용 후 다시 그 그릇에 놓아두는 것이 예절이라는 것입니다.
6. 일식당에서 모든 음식을 젓가락으로 먹는 것은 아닙니다. 초밥의 경우 손으로 집어 먹어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물론 물수건으로 손을 닦은 다음에 말입니다. 이때 물수건은 펼쳐서 사용하지 않고 최초에 나온 물수건 형태 그대로를 유지한 채 초밥을 집는 손가락을 닦으면서 먹어야 합니다. 특히 생선 알이 들어간 초밥을 먹을경우 알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먹는 것보다는 손으로 집어 먹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일본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보면 젓가락을 사용해 초밥을 먹는 등장인물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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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꼬치나 구이 요리의 경우 꿰어진 막대기를 들고 핫도그 먹듯이 먹어서는 안 됩니다. 꼬치나 구이를 하나하나 빼서 접시에 올려놓고 한입 정도로 잘라 젓가락으로 먹는 것이 일반적인 예절입니다.
8. 기타 일본의 생활 식탁예절은?
- 식사 전 ‘잘 먹겠습니다’, 식사 후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음식 접시나 밥그릇을 한 손으로 드는 것은 역시 예의에 어긋난다. 그릇은 두 손으로 드는 것을 기본적인 예의로 여긴다. 또한 밥을 먹을 때 밥그릇을 들고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네처럼 식탁 위에 밥그릇을 올려놓고 허리를 굽혀 밥을 먹는 것을 어색해한다.
- 식탁 위에서 코를 풀거나 트림을 하는 것은 터부시 되는 행동이다.
- 방석을 발로 밟아서는 안 된다. 방석의 위치를 조절할 때는 발이 아니라 무릎으로 한다.
- 음식을 먹을 때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다만 국을 마실 때는 상관없다.
- 음식을 다 먹은 경우에 처음에 식기가 세팅 되었던 모습 그대로 보존해주는 것도 예의라고 여긴다.
9. 일본인이 생각하는 최악의 테이블 매너 몇 가지
- 신문이나 잡지를 읽으며 식사를 하는 행동
- 식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음식을 먹는 행위
- 입안에 음식을 가득 담은 채 말을 하는 행위
- 식사 도중에 화장실에 가는 행동
- 케이크를 둘러싸고 있던 셀로판 포장을 입으로 빠는 행위
- 밥 위에 국(된장국)을 부어 먹는 행동
- 식사 중에 젓가락을 입에 물고 빠는 행위
- 음식에 너무 많은 양념을 넣는 행위
- 개인 접시에 덜어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끊인 냄비 채로 먹는 행위
- 식사할 때 떠드는 행위
- 고기 등 음식을 자를 때 칼질을 소란스럽게 하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