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스토리/칼럼노트
동일본대지진,엔고의 더블펀치 맞은 일본경제,다시 일어설 것인가
FKI자유광장
2011. 11. 18. 16:24
김현기
일본의 새 총리가 선출되면서 3월 11일의 동일본대지진 이후 침체돼 있던 일본 사회 시스템 이 리셋(reset)되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가 워낙 인기가 없었고 국민의 원성을 많이 받은 만큼 새 총리는 어찌 보면 홀가분하게 정권 초기를 맞이할 수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새 총리가 가장 먼저 맞닥뜨릴 과제는 다름 아닌 경제다. 특히 최근의 급격한 엔고로 인해 기업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가 현실적인 제1차 과제다. 달 러 대비 엔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치, 즉 엔화 가치로는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얼마나 엔화 가치가 올랐는가는 불과 3~4년 전과 비교해보면 극명히 드러난다. 당시 엔화는 달러 대비 130엔까지 갔고,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은 750원 정도였다. 일본에 주재하는 한국기업 주재원들의 경우 한국은행에서 100만 원을 송금받으면 엔화로 13만 엔어치를 쓸 수 있었지만 이제는 7만 엔 정도가 된다. 거의 2배에 가까운 변화에 일본인들도 일본인들이지만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 주재 원이나 교포들도 초비상이다.
일본 수출기업들은 달러당 76엔이란 전후 최고기록을 깨는 기록적인 엔고로 인해 당장 경영실 적이 우려되고 있다.
파나소닉의 경우 엔/달러 환율이 1엔 낮아지면(엔화 가치 상승) 이익이 38억 엔(약 500억 원) 감소한다. 아무리 현지생산 비율을 높였다고는 하지만 도요타·닛산·혼다 등 자동차 업계도 사정 은 마찬가지다. 일본자동차공업협회와 전일본자동차산업노조총연합회가 최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엔고의 수준이 아무리 비용절감 등을 통해 노력을 해도 극복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며“현재 환율 수준이 장기화되면 국내 사업기반을 유지하는 데 심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 고 선언하고 나섰을 정도다.
엔고는 대지진 피해를 간신히 수습해 회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기업들에 있어 거의 절망적인 수준이다. 닛산자동차의 다가와 조지 부사장은“온갖 종 류의 대응을 다 동원해도 현 환율수준은 비정상적”이라며 “개별기업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걸 어떻게 하겠느냐” 고 자조했다. 마즈다자동차의 야마키가쓰지 부사장도“사업 이 유지되기 힘들 정도의 투기적 환율”이라며“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들은 예전의 엔고 상황에서도“힘들다”고 아픈 소리를 했지만 실제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하는 구체적 인 행동으로 옮긴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상 당수 기업들이‘일본 탈출’의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8월 23일 이토추상사·오릭 스·샤프·NEC 등 일본의 주요 기업체 사장 1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업체의 40%가“신흥국으로 생 산기지를 대거 이전해 현지 생산을 확대할 수밖에 없게 됐 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경영자들 중 70%는“지난 1995년의 엔고 국면에 비해 대부분 기업이 엔고 저항력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현재 엔 고 수준은 결정적 수익악화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답했다. 게다가 현재 40%에 달하는 법인세율을 간 정권 당시 낮춰주 겠다고 했지만 이 또한 동일본대지진 이후 피해복구를 위한 부흥재원 마련이 급선무로 대두되면서 무기한 연기된 상태 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대부분 기업들이 한 마디로 더 이상 국내에서 사업을 계속하기 힘들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재계 대표기관의 하나인 일본상공회의소의 오카무라 다다 시(전 도시바 회장) 회장은 최근 총리 관저에서 열린 신성장전 력 실현회의에 참석,“ 현 엔고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한 회원 사의 절반 이상이 해외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미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상당수 포착되 고 있다. 혼다는 최근 멕시코에 자동차공장 신설을 추진 중이 며, 히타치는 55년 만에 TV 자체생산을 포기하고 전량 해외 에 위탁하는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이 같은 기업들의 엑소더 스 현상은 일본 내 산업공동화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도요타의 경우 엔고로 인한 타격이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 의 소나타 약진으로 현실화되고 있다고 보고 비상이 걸린 상 태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이 진두지휘해 도요타의 미국 내 대 표 모델인 캠리의 신형모델을 즉각 투입할 계획이다. 신형 캠 리는 현지 부품조달 비율을 훨씬 높였다.
일 재계는 일 정부와 일본은행이 보다 적극적으로 외환시장 에 개입, 엔고를 저지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 는 예전의 외환시장 개입의 경우는 미국이나 유럽과의 공동보 조하에 이뤄져 나름의 효과가 있었지만 현재는 미국과 유럽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은 시세를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데 저항이 강 하고 지난 3월 대지진 이후의 개입 때처럼 대의명분도 없다 는 점을 들어 부정적이다. 즉, 일본 수출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는‘일본 내 사정’때문에 공조에 나서기는 힘들다는 것 이다. 현재의 엔고, 보다 정확히 말하면 달러 약세는 미국의 재정과 경기에 대한 불안, 그리고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에 따 른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의 펀더멘털에 의해 적절히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일 재무성이나 일본은행은 단독개입도 불사하 겠다는 입장이나 설령 그렇다 해도 엔으로 투자자금이 계속 몰려오고 있는 가운데 개입효과는 단기간, 아니 단시간에 사 라져버릴 공산이 큰 상황이다. 일본은 계속해서 미국 측에 “기축통화 달러의 붕괴는 금융시장을 더욱 혼란에 빠뜨릴 수 있으니 달러 가치를 지켜야 한다”며 미국의 지원사격을 촉구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 정부는 엔고를 저지하기 위해 유동성 공급을 늘리는 방책도 속속 내놓고 있다. 8월 24일에는 일본국제협 력은행(JBIC)을 통해 1,000억 달러(약 100조 원) 규모의 자금 을 금융시장에 공급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재정건전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단기적이라도 외환시 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일단은 기업의 숨통을 틔워주고 엔고 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다. 더 이상 수출경쟁력이 약화돼 경제에 치명상을 입혀선 곤란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오히려 엔고 현상이 지속되는 딜레 마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거세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유동성 공급을 발표한 당일도 엔고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냉정하게 보면 현 엔고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체념 또한 산업계에서는 퍼지고 있는 실정이 다. 미국과 유럽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달러와 유로의 약세가 이어지고 엔고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데, 현재 사정으로는 미국과 유럽 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될 조짐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 일각에서는“일본의 국채 신용 등급이 강등돼 이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 됐는 데도 엔화 통화가치는 올라가니 어쩔 도리가 없다”는 한숨 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경기약화를 막기 위해 추 가 양적완화에 나설 경우 엔화는 추가 절상될 것이 불 보듯 훤하다.
이에 따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을 비롯한 일본 수출기업들 은 환율 타깃 수치를 재조정하고 있다. 설령 외환시장 개입효 과가 나타나더라도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빠르게 환율 조정 치를 반영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업들 은 8월 중에 대부분 환율 추정치를 달러당 82~85엔에서 80엔 혹은 70엔대 후반으로 낮춰 잡았다.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 고 수습, 그리고 전대미문의 엔고라는 더블펀치를 맞은 일본 경제가 과연 어떻게 다시 박차고 일어설 것인지, 아니면 이대 로 주저앉고 말지 큰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
* 출처 : 월간전경련
* 출처 : 월간전경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