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십니까?
경제의 영역에 있어 위법한 행위를 모두 잡아 내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옵니다. 허나 잘잘못을 모두 헤아리지 못한다 한들 더욱 신중을 가해야 하는 것은 '위법이 아님에도 위법이라고 판단하는' 일이 아닐까 하옵니다.
이처럼 경제 민주화를 논의 하매 소인, 심히 염려가 되는 부분은 백성들의 후생과 사회의 효용이 긍정적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려된다'하여 많은 부분들이 ‘미리 금지’ 된다는 것이옵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말이 있사옵니다. 경제를 논의하사 ‘구더기’가 들끓어 장을 망칠 수도 있다는 걱정에 장 담그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옵니다. 천조국의 어느 대법관은 이런 기록을 남겼사옵니다.
"소규모 사업체 수가 계속 감소하고 동시에 기업결합의 수가 많아지는 시장은, 소규모 경쟁기업들이 많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소수 거대기업들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서서히 바뀌어 경쟁이 파괴될 것이다"
이러한 기록에 붙여 소인 이렇게 묻고 싶사옵니다. “무슨 근거로?”
우리는 규모가 있는 기업들을 미루어 짐작하여 거대한 기업들의 횡포를 우려 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는 언제까지나 '우려' 일 뿐, 증명되지는 않은 소설일 뿐이옵니다. 설사 우려가 현실이 된다하면 ‘사후 처리’를 통하여 엄격한 처벌을 내리고, 피해를 본 백성들을 구제해 주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보다 백성을 위하는 길일 것이옵니다. 소자가 이미 언급했듯, 나라와 백성 모두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조심도 없을 것이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거대한 기업이 시장의 지배력을 높여가매,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고, 생산을 제 맘대로 줄이며 백성들을 농락한다 우려하기도 합니다. 허나 시장의 지배력이라 할 때, 어디까지 지배력을 허용해 주어야 하는 것인지 여쭙고 싶사옵니다. 기업의 확장에 따라 백성들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나, 비용 절감을 통한 생산의 효율과 그에 따르는 소비자 후생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형국이 안타깝기만 하옵니다.
기업의 행위를 비판 하려거든 손실이 발생한다고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효율 대비 손실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할진데, 누구도 이렇게 말하지 않더이다. ‘우려’가 마치 현실인냥 이야기를 할 뿐 누구하나 명철한 분석을 바탕으로 경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요, 심적인 추측과 시장 원리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단편적인 해석만 펼쳐대는 형국이 개탄스럽기만 하옵니다.
기업을 소유한 자가 사적 이익 추구 행위가 심히 걱정이 된다는 근거 없는 염려로 그들을 규제하려고만 들고 있사옵니다. 예컨대, 어느 사람이 돈이 많다 하여 ‘독점의 우려가 있다’ 여겨 그 사람의 돈을 못 쓰게 한다면 그것이 올바른 처사이옵니까? 분명 좋고 나쁨은 공존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1%의 가능성에 겁을 먹어 99%를 놓치고 있사옵니다. ‘효율보다 손실이 크다’는 증명도 없이 말입니다.
무엇이 도대체 왜 나쁜 것이며, 나쁘다면 어떻게 나쁜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없사옵고, 정말 나쁜 것인지에 대한 분석도 없사옵니다. 경제 민주화를 말함에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모든 것이 사뭇 다른 이 마당에, 개념 정립이 어렵다면 경제 민주화의 한계는 뭐냐는 것에 대해서는 논의를 해 보아야 할 것이옵니다.
이 나라는 ‘꿩 먹고 알 먹자’는 생각이 팽배하옵니다. 허나 꿩을 먹고 나면 알은 얻을 수가 없사옵니다. 이런 것을 하면 잘 될 것이라는 것만 말할 뿐, 이것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는 인색합니다. 경제 민주화를 하면 좋아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 이들이 많으나 이들의 믿음과 장미빛 미래도 실로 증명되지 않은 그저 그랬으면 하는 희망일 뿐이옵니다.
증명이 안 되었거나, 증명이 안 되는 사실을 두고 결국 그냥 문제라 합니다. 등살에 떠밀려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백성을 볼모로 정책을 연습하는 것이 다름 아니옵니다.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라 하지 말며, 문제가 왜 문제인지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없는 것이 안타까운 요즘, 볼모로 붙잡힌 백성들의 미래가 사뭇 염려되어 소자 앙망하옵니다. 정신 차리시옵소서!
자유광장 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