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 금융위기 이후로 시장이란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시장이 탐욕이란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한 때 시장주의를 외치던 사람들도 지금은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세월동안 한풀이를 하듯이 정치가 휩쓸고 갔다. 그 이후에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현재 고등학교 정치교과서에는 성장의 시대를 정치적으로 폄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수능 시험에서 분배정책은 모르면 안 되는 필수 학습항목이 되었다. 사람들은 경제 민주화를 시대정신이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이니 착각할 만도 하다.
개인 간 소득 불평등이 당연하다고 믿는 학설이 있다. 사회체제가 달라져도 소득분배 구조에는 별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반대로 사람들의 직업이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바뀌면서 소득 불평등이 증가하다가 사회가 더욱 발전하게 되면 이러한 불평등이 해소된다는 학설도 있다.
* 파레토 법칙 :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가 1860년 발표한 소득분포에 대한 통계적 법칙이다. 소득불평등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일정하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19세기 영국 소득에 대해 연구하던 중, 상위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낸 수식으로, '20대 80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 쿠즈네츠의 U자 가설 : 경제발전과 소득분배 간에는 일정한 연관성이 있다는 가설이다. 소득분배의 균등도가 경제발전의 초기단계에는 점점 떨어지다가, 경제발전이 성숙 단계에 들어서면 다시 높아진다는 것에 주목해서 세워졌다. 국가별 소득통계 시계열자료를 이용하여 1995년 발표한 가설이다.
100여년이 넘도록 연구했으나 결국 소득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지, 혹은 사회구조와 관계없이 고정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산업혁명 이후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의 소득 격차가 더 증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부유한 국가의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국가의 부유한 사람보다 더 많은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국가가 개인 소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유는 시장의 작용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못산다는 빈곤층은 전세계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상위 30퍼센트 수준의 삶을 산다.
경제성장이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지 완화시키는 지에 대해서는 연구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가 침체한 기간에는 소득 불평등도가 높아졌다. 외환위기 이후 저소득층의 소득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소득격차도 벌어졌다.
기본적으로 분배문제가 악화된 이유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저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성장의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쟁력 높은 기업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술과 브랜드를 가진 기업들도 많지 않다.
수출 기업들이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수출을 하면서 제값을 못 받고 있다. 따라서 수입가격 대비 수출가격의 비율인 교역조건은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이것이 국민소득 증가를 느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렇게 기술력이 없고 브랜드가 없는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비정규직에 의존하게 된다. 제조업의 성장 원동력이 떨어지면 서비스 분야에서도 내수 부족의 문제가 발생한다. 직장이 없는 사람들은 자영업으로 생존의 길을 찾지만 성장 동력을 잃은 경제에서는 제살깎아먹기 경쟁에 직면하게 된다.
만일 고용을 창출시킨다고 임금이 낮은 분야에서 근무하도록 하면 소득불평등도는 올라간다. 더욱이 실업이 증가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성장이 경제민주화의 해법
지난 10여 년 간 잘못된 처방으로 경제문제를 다뤄왔다. 많은 정책들이 성장을 막는 방향으로 실시되면서 잠재성장률도 떨어졌다. 비정규직 문제, 내수 문제, 자영업 문제, 중소기업 문제 등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저성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해결된다.
과거 고도 성장기에 어떤 현상들이 일어났을까. 고도 성장기에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고,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정부가 개발투자 금액의 70% 이상을 지출하고 인프라를 구축해 주었다. 기업이 성장하니 좋은 일자리가 늘면서 소득분배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정답이다.
현재는 이러한 선순환 방식이 아니라 눈앞의 현상만 덮고 보자는 정책이 처방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글로벌 경쟁력과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들이 늘어나고 중소기업이 성장하도록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우리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준비시켜야 한다.
더 이상 기업의 발목을 잡지 말고 놓아 주어야 한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더 많은 성장 신화가 필요하다. 요즘 유행하는 경제민주화를 이룩하는 진정한 길은 소득불평등 해소에 있다. 그리고 소득불평등 해소는 경제의 고성장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경제성장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되어야만 실현 가능하다. 이것이 참다운 경제민주화이다.
(출처: KERI컬럼) 양준모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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