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들은 올해 블랙프라이데이(검은 금요일)에도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증시 대 폭락 장을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도 갖고 있지만 미국에서 최대 규모의 쇼핑이 이뤄지는 날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날로 연말 쇼핑시즌의 신호탄을 올리는 날이다. 처음으로 적자(Red ink)에서 흑자(Black ink)로 전환하는 날이라는 의미에서 블랙프라이데이로 이름 붙여졌다. 이날부터 크리스마스와 연말까지 세일에 들어가는 날로 소비재 업체의 경우 전체 매출의 60~70%가 이 기간에 이뤄진다.
품목별로 절반 가까이 할인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쇼핑족들은 이날만을 목놓아 기다릴 정도다. 올해도 어김없이 금요일 자정에 시작되는 블랙프라이데이를 앞두고 소비자들은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매장 오픈을 기다렸다. 원하는 제품이 떨어지기 전에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블랙프라이데이 판매실적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로존 위기와 미국경제 회복세가 둔화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깼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더욱 싼값에 제품을 구입하려는 고객들이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덕분에 블랙프라이데이의 판매호조를 미국 소비심리 개선으로 해석한 주식시장은 큰 폭 상승했다. 경기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미 경제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에 이르기 때문이다.
불상사로 얼룩진 블랙프라이데이
올해 블랙프라이데이는 유난히 쇼핑사고가 많았다. 대폭 할인된 물건을 먼저 차지하겠다는 욕심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노인을 외면한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최루가스를 쏜 사건까지 발생했다. 11월 25일 0시 15분, 미 웨스트버지니아 주 로건카운티의 쇼핑센터인 ‘타깃’에서는 노인 한 명이 쓰러졌지만 모두들 외면하는 바람에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불운의 주인공인 월터 반스 씨(61) 는 이 시각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고르다가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쇼핑객들은 그냥 지나쳐 갔다. 심지어 일부 쇼핑객은 쓰러진 반스 씨 위를 뛰어넘어 지나갔다. 한참 동안 방치된 반스 씨는 매장을 둘러보던 응급실 간호사에게 발견돼 심폐소생술을 받았고 때마침 쇼핑을 나온 응급구조원이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반스 씨는 2000년 심장수술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한 30대 히스패닉계 여성이 월마트 전자제품 코너에서 비디오게임기기인 ‘X박스’를 먼저 잡으려고 다른 쇼핑객들에게 최루가스를 분사해 20여 명이 다쳤다. 노스캐롤라이나주 킨스턴시 월마트에서도 경찰이 질서유지를 위해 쇼핑객들에게 최루가스를 분사하는 일도 벌어졌다. 월마트 직원이 전자제품을 가득 담은 화물 운반대를 끌고 나타나자 이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바람에 난장판이 되자 경찰이 최루가스를 분사한 것.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서는 매장에서 게임기를 훔쳐 달아나는 사람을 경찰이 체포하는 과정에서 격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선 이날 오전 1시 45분경 쇼핑객에게서 물건을 뺏으려던 한 강도가 쇼핑객이 물건을 내놓지 않자 총을 쏴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페이터빌 시에서도 쇼핑몰 근처에서 강도들의 총격사건이 발생했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미 언론들은 매년 사고가 있었지만 올해처럼 많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만큼 경기가 침체된 탓에 싼 가격에 제품을 구입하려는 쇼핑객들이 몰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온라인 쇼핑 큰 폭 증가
블랙프라이데이로 시작된 올해 미국 추수감사절 연휴 동안의 소매 매출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미국 소매협회(NRF)가 11월 25~27일 연휴 동안 소매매출액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보다 16%나 증가한 524억 달러를 기록했다. 1인당 평균 지출액은 398.62달러로 이중 150.53달러가 온라인을 통한 쇼핑이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라인 쇼핑의 위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매장이 북새통을 보였지만 실제 매출증가는 온라인에서 상당부분 이뤄졌다. 온라인 매출은 대폭 증가한 반면, 오프라인 매출은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쳐 희비가 엇갈렸다. IBM 코어메트릭스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이 블랙프라이데이에 온라인을 통해 제품을 구매한 금액은 376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날보다 20% 늘어났다. 반면, 블랙프라이데이 당일 소비자들이 매장에 직접 나와 구매한 금액은 4,656억 달러로 지난해보다 2.8% 늘어나는 데 그쳐 지난해의 5.2% 증가에 미치지 못했다.
온라인의 위력은 사이버먼데이(11월 28일)에도 여실히 입증되었다. 사이버먼데이는 블랙프라이데이에 이어 사흘 뒤인 다음주 월요일을 말한다. 소매업자들이 이날 블랙프라이데이에 쇼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소비자들을 위해 대대적인 온라인할인 행사를 한다. 전미소매연맹은 올해 사이버먼데이에 온라인 쇼핑을 한 미국인이 1억 2,300만 명으로 추산돼 지난해에 비해 15%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온라인 결제 서비스업체 페이팔은 모바일 기기를 통한 구입이 지난해보다 5배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쇼핑객들이 온라인으로 몰리면서 인터넷 트래픽이 이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나 증가했다.
IBM스마터커머스마케팅의 최고전략책임자(CSO) 손 스퀘어는 “현재 모바일 매출의 35%가 아이패드를 통해 일어나고 있다”며 “아이패드를 통한 온라인 매출은 전체 온라인 매출이나 다른 모바일기기에 비해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PC를 통한 온라인 쇼핑은 주로 퇴근 후 집에서 이뤄지고 있는 점에 착안해 ‘카우치 커머스(couch commerce)’라고 불린다.
승자는 아마존, 그리고 미국경제?
올해 블랙프라이데이의 승자는 아마존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시장조사업체인 컴스코어는 아마존이 블랙프라이데이 인 11월 25일 온라인 매출 기준으로 월마트, 베스트바이, 타깃, 애플을 제치고 방문객 수가 가장 많은 소매업체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아마존은 이날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당일 태블릿 PC 킨들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배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애플도 아마존에 뒤처지긴 했지만 매출호조를 보였다. 아이패드와 아이폰, 아이팟, 맥 컴퓨터 등에 대해 소폭의 할인혜택을 주는 데 그쳤으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외신들은 전했다.
한편, 블랙프라이데이 연휴 매출호조에 이어 미국 소비자 신뢰지수가 11월 급등세를 보였다. 연말을 앞두고 소비심리가 개선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미 민간경제조사기관인 콘퍼런스보드에 미국의 11월 소비자신뢰지수는 전월비 15포인트 이상 뛴 56을 기록, 2003년 이후 8년 만에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TD증권 경제전략가 밀란 멀레인은 분석노트에서 “소비자들은 이전 조사에서 나타난 것과 달리 그렇게 비관적이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여 최근 소비개선이 지속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면서 “미 연방정부 재정적자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혼란, 유럽 채무위기가 안정되면 소비심리는 다시 큰 폭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출처 : 월간전경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