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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정치 영역에 있어 롱테일 현상 - 포퓰리즘의 유혹 (권현규 동국대학교 경영정보학과)

우리 사회문제에 대한 대학생들의 참신한 시각을 보여주는 재15회 시장경제컬럼만평대회 우수작(주최 : 자유기업원)들을 소개해드립니다.
 
“전체 매출의 80%는 상위 20%에 해당하는 고객이 만든다.”라는 파레토 법칙은 오랜 기간 비즈니스의 황금률로 여겨져 왔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저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핵심 제품의 개발과 우량 고객을 선별하는 전략에 초점을 두었고, 여기에 충실한 기업들은 승승장구를 외치며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 더욱이 이 파레토 법칙은 경제 영역 이 외에 정치, 사회, 문화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현상을 설명하는데 신기할 정도로 들어맞으면서 만병통치약이라는 수식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파레토의 진리도 인터넷의 힘 앞에 무릎을 꿇는 모양새이다.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의 도서판매 매출 사례를 찾아보면 전체 매출 중에 25%가 바로 과거에 팔리지 않거나 인기와 거리가 먼 다수의 희귀서적에서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단지 아마존의 사례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오늘날 시장에서 소액의 매출만을 올려준다고 생각했던 80%가 전체 매출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고, 급기야 이를 일컫는 ‘롱테일 법칙’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롱테일 법칙은 그 의미에서 파레토의 그것과 반대이지만, 여러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는 다재다능함만은 쏙 빼닮았다. 바로 정치 영역에서도 롱테일 현상이 목격되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피와 땀의 대가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었고,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를 통해 그것을 작동하고 발전시켜왔다. 우리의 선거는 보통투표와 비밀투표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즉, 일정 나이만 되면 성별이나 직업,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유권자에게 1인 1표의 투표권을 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롱테일 현상이 발견된다고 할 수 있겠다. 1주당 1개의 의결권을 갖는 기업 구조에서는 다수의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 법인의 중요한 경영사항에 대하여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선거에서는 고귀한 소수와 사소한 다수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거의 원칙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민주정치의 틀을 갖출 수 있었지만 여기에도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바로 투표는 최대 다수의 표를 획득하면 전부를 차지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엘리트 집단, 정치인들은 이 기회를 결코 놓칠 리 없다. 표를 얻기 위해 영혼마저 팔 기세의 정치인들은 정작 어제의 일은 기억 못하는 바보이지만 득표수 셈에 관한 한 누구보다 밝기 때문이다. 최근 일련의 선거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눈에 띈다. 양극화, 약자, 소외 계층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쪽이 선거에서 모두 승리를 쟁취하였다. 여기에 친서민, 무상, 소통을 얹으면 더할 나위 없는 필승 전략인 것처럼 보인다. 똑똑한 정치인들은 누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지, 그리고 롱테일 법칙을 어떻게 적용할 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또한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대중에 대한 호소는 가히 눈물샘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번 재미를 본 국민의 대표들이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사안을 거수로 결정하려 하는 국민투표가 바로 그 것이다. 자기의 인기에 손상이 되는 결정에는 발을 빼겠다는 못된 심보이다. 소수 지배자들의 독단에 대한 해결책으로 모두가 지배하는 세상을 제시한 것이다. 학창시절 시험기간을 떠올려보자. 모두가 맞추는 문제는 아무도 틀리지 않는 문제와 다를 것이 없었다. 즉 모두가 지배하는 세상은 아무도 지배받지 않는 세상이다. 이 세상은 기존의 사회를 유지했던 모든 법과 제도, 질서 등이 붕괴된 상태를 의미하며, 불행히도 현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이미 목격되기 시작하였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잘 보이려 하고, 정치인들은 국민이 아닌 트위터를 두려워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다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흔히 고전을 지혜의 보고, 현재를 비춰보는 거울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 백년이 지난 지식을 현재에도 공부하는 이유인 것이다. 변질된 민주정으로 인해 스승 소크라테스를 잃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역설한 나쁜 민주주의는 어쩌면 오늘날 시대상황의 경고는 아닐까? 우리는 과잉 민주주의로 인해 힘들게 이룩한 참된 민주주의 전체가 비판받는 현 상황에 대한 해답을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인해 꼼수가 통하지 않는 시장의 환경처럼 정치 영역에 있어서 포퓰리즘을 차단할 보이지 않는 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권현규 / 동국대학교 경영정보학과 (대상 수상작)
 
* 출처 : 자유기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