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그리고 급변하는 세계
- 정운갑 MBN 수석논설위원(앵커)
“상상이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지난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AlphaGo) 대국 직후 다시 회자된 말이다. 그만큼 기술의 발전이 급속히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기술뿐 아니라 정치·사회 등 각 분야에서 예측을 뛰어넘는 변화를 목격하게 된다.
한국 시각으로 지난 24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Brexit)가 대표적이다. 세계 경제는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세계 증시에서 하루에 약 3천조 원이 증발했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EU·일본은 돈을 풀어 충격파 차단에 나섰다. 국익을 앞세워 글로벌 환율 전쟁도 시작됐다. 우리 금융당국도 24시간 비상체제를 가동, 국내 영국계 자금 36조 원의 향방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08년과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질지, 세계 경제를 대침체로 몰고 갈지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내 경기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대한민국 경제는 조선 해운업을 필두로 해서 구조조정과 맞물려 있다. 기업의 자금 조달이나 자산 매각이 어려워질 수 있다. 주력 업종의 경쟁력이 무너지고 있고 새로운 탈출구를 찾는 데 힘겨워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치적 리더십에 기댈 수도 없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단합과 협치의 리더십이 중요한 데, 정치권은 개개인의 이해득실에 몰두하고 있다.
“길이 안 보입니다. 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 겁니다.” 한 유통업계 CEO는 조선업 구조조정과 맞물려 “거제 울산 매출이 몇 주 사이 10% 급감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 국민이 내세웠던 것이 위기 속에 빛을 발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이 위기라고 보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예측하기 어려운 일은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전개되고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도널드 트럼프가 사실상 확정된 데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브렉시트 쓰나미가 미국 대선 판도까지 뒤흔들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나아가 이번 브렉시트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71년간 유지됐던 미국 주도의 글로벌 정치와 경제 질서에 대한 일대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미국이 ‘팍스아메리카나’의 핵심 축으로 삼았던 전통적 자유경제체제에 대한 의구심을 확산시키고 있다. 양극화를 부른 세계화에 대한 도전, 신자유주의 반발 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러시아는 서방 진영에 비상이 걸린 사이, 경제협력을 넘어 군사적 밀월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25일 중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무력 사용과 무력 위협에 반대하며 다른 국가에 대한 제재를 통해 위협을 가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분명히 했다. 남중국해에서의 미국의 군사 활동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약화를 예견하며 속으로 크게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세대 간, 빈부 격차를 둘러싼 갈등,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일어난 김 모(19) 군의 죽음이 던지는 메시지, 외주의 위험화에 대한 경고… 일련의 상황이 사회적 위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위기의 순간 하나로 힘을 결집해 잘 헤쳐 나간다는 것을 자부해왔다. 여기에는 리더십, 정치적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여권은 여전히 집안싸움에 골몰하고 있고 야당은 각종 의혹과 비리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각 분야 지도층이 노골적으로 돈만 좇고 있는 현실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교수의 옥시 보고서 조작 논란과 지금 목격하고 있는 법조비리가 대표적입니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가치와 철학, 자긍심을 가져야 할 집단조차 모두 돈돈돈 하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부문에서의 격변은 이전과는 수위를 달리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총선 결과를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2017년 대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선거 국면이 다가올수록 국민을 하나로 결집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세대교체 등 뭔가 현 체제에 대한 질적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거셀 겁니다.” 내년 대선을 예측하는 한 젊은이에게 이유를 묻자 기성세대들은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다가도 결국 ‘척을 할 뿐’이지 자기들의 방식대로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기성세대들은 지금까지 성공한 인생이거든요. 그 노고와 성공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취업난 가중 등 현재 상황,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지요.”
기존의 사고와 틀로는 현재의 위기, 앞으로 다가올 파고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 답답한 남북관계 등 외교·안보 상황, 툭하면 싸움만 하는 변하지 않는 정치 문화, 이 모든 것에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급변. 이미 대한민국도 그 소용돌이 중심에 들어서 있다는 것, 이것부터 서둘러 깊이 있게 인식해야겠다.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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