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철|전경련 상근부회장
필자의 어린 시절만 해도 보릿고개가 일상적이었 다. 봄철만 되면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 닥나고, 올해 농사지은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 극심 한 배고픔에 시달리는 가정이 한둘이 아니었다. 오죽 하면‘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는 말이 나왔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사람 은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경제개발 시대에 청·장년기 를 보내며 고속성장에 기여할 수 있었고, 지금은 우리 나라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기에 살고 있다.
당시 우리 국민에게는 희망이 있었고 열정도 있었다.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 획을 통해 경제발전의 뚜렷한 목표와 비전을 제시했다. 우리 기업은 그런 목표를 달성하는 구체적인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외자조달, 수출시장 개척을 위해 세계 방 방곡곡을 뛰어다녔다. 근로자들은 중동이라는 열사의 땅도 마다않고 날아가서 비 지땀을 흘리며 외화를 벌어들였다. 온 국민이 자식세대에게는 더 이상 굶주림과 헐벗음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피땀을 흘렸던 것이다.
그 결과는 세계가 놀랄 만했다. 건국 당시 최빈국에 불과했던 우리나라는 어느 덧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경제규모 480배, 1인당 국민소득 250배, 수출 1만 1,000배 등 지난 50년 간 참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미군이 버 린 엔진과 드럼통으로 자동차를 만들던 나라에 글로벌 4위의 자동차 회사가 생겼 고, 라디오를 조립해 팔던 나라에 반도체, 휴대폰, 디지털TV 등을 생산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자웅을 겨루고 있으며, 철강·조선 등이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 경제 의 새로운 역사를 쓰며 숱한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5천년 역사 이래 한 번도 앞선 적이 없었던 중국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지금 한국경제는 성공적인 경제개발의 모범사례로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여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지난 50년 동안 경제발전의 바탕 이 되었던 국민의 의지와 열정이 사라지고 있고, 각계각층의 제 몫 찾기 목소리는 높아지는 데 반해 근로의욕은 떨어지고만 있다. 지역·이념·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 고 있으나 이를 통합·조정해야 할 정부의 구심력은 약화되고 있다. 고령사회로 접 어들면서 생산가능 인구도 줄어들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선진기업을 따라잡기만 하면 되었으나 이제는 선두에 서서 실패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혁신과 창의로 새 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외부환경도 좋지 못하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글로벌 수 출시장은 위축되고 있는 반면, 중국과 동남아 등 후발국은 무섭게 성장하여 수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을 제소한 애플의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기업 과 제품에 대한 외국기업의 견제와 압박도 심화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거나 멈출 수는 없다. 밑바닥에서부터 선진국 문턱까지 치 고 올라온 그동안의 기세를 이어 이제 세계 역사를 주도하는 리더국가로 나서야 한다. 전경련이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2030년 GDP 5조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만 달러, 세계 10대 경제강국’비전을 제시한 것은 이런 시대적 요구에 따른 것 으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몸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의지와 열정이라는 DNA를 다 시 한 번 되살리기만 하면 어려운 과제도 아니다. 훗날 지금이 우리 역사의 정점이 아니라 더 높은 미래를 향한 도약의 시대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정병철 ( 전경련 상근부회장 )
* 출처 : 한국경제연구원
* 출처 : 한국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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