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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스퀘어/요즘뜨는이야기

삼시세끼부터 꽃할배까지, 리얼 버라이어티가 배우를 좋아하는 이유

요즘 예능을 보면 배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기존에는 아이돌이나 걸그룹 멤버들이 독립을 위해 혹은 그룹 홍보를 위해 예능으로 등장한 사례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배우들이 예능으로 많이들 들어오고 있다. 이런 현상은 리얼 버라이어티가 관찰 예능으로 더욱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가속화되고 있는데, 예전에는 배우들의 예능 출연은 기피 사항 중 하나였다.

예능 프로그램 포스터


모든 연예인들이 그렇지만, 배우는 특히 이미지를 먹고 사는 직업이다. 극 중의 캐릭터가 실제 자신인지 착각할 정도로 몰입해야 연기가 되고, 관객들 또한 극에 쉽게 몰입할 수 있는데, 예능에 출연하게 되면 얻게 되는 코믹함이 연기에도 영향을 끼치고,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관객들이 미리 웃을 준비를 하고 보기 때문에 감정 몰입이 되어야 하는 작품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런 불안감 속에 배우들은 예능 출연을 거부했었고, 예능에서 배우들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역전된 것 같다. 히트한 예능 프로그램에는 항상 배우가 있다. ‘삼시세끼’의 이서진이 대표적인 케이스고, 최근에는 ‘꽃보다 할배’에 이서진과 함께 최지우가 나오기도 한다. ‘정글의 법칙’에서는 손호준, 이성재, 임지연이 나오고, ‘용감한 가족’에는 심혜진, 이문식, 박주미가 나온다. ‘1박 2일’에는 김주혁, 차태현이, ‘진짜사나이’에는 임원희, 이규한, 정겨운이 나온다. ‘아빠를 부탁해’에는 이경규 외에 조재현, 강석우, 조민기 모두 배우들이다. 왜 예능에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기 시작했을까?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진짜인 듯, 진짜 아닌, 진짜 같은 너

리얼의 추세는 더욱 리얼해지는 환경과 장치로 진화해나가고 있다. 영화 ‘트루먼쇼’에서 주인공 자신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태어났을 때부터 프로그램 속에서 방송되는 것이야말로 리얼 버라어이티의 최종 목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더욱 강도 높게 리얼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은 관찰 예능 시대로 집안의 모든 곳곳 혹은 제한된 환경 속에 모든 곳에 카메라를 두고 있는 그대로를 촬영하여 내보낸다. 시청자에겐 VJ가 따라다니는 예능보다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느껴질 정도로 은밀한 곳까지 보여주는 관찰 예능이 더욱 자극적이고 리얼로 다가오게 된다.

하지만 이런 리얼 환경은 정말 리얼이 아니라 환경일 뿐이다. 그 안에 예측 가능한 범위의 환경을 설정해두고, 여러 장치 혹은 설정을 통해 프로그램의 컨셉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기존의 예능인이나 개그맨의 경우는 웃기려는 강박감에 무리한 시도를 하게 되고, 아무리 설정을 잘 해두었다 해도 연기자가 의욕이 앞서면 의도했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기존의 프로그램과 차별성을 나타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예능에서 요구하는 멤버는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 자체도 의도된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있다. 무조건 자연스러운 내추럴한 모습만 보여주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의도된 캐릭터를 과하게 몰고 가는 것도 안된다. 캐릭터는 만들어야 하지만, 자연스럽게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숙제이다. 하지만 이에 적합한 직업이 있었으니 바로 배우다. 배우는 시청자가 가짜라고 생각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진짜인 듯 연기를 한다. 연기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 알지만, 너무나 리얼해서 자신과 동일시하거나 깊게 몰입함으로 극 중 배역을 실생활에서도 혼동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KBS2 '용감한 가족' 예고편


특히 ‘용감한 가족’에 나오는 박주미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용감한 가족’에서 박명수의 아내라는 설정으로 나온 박주미는 누가 봐도 박명수와는 미녀와 야수 컨셉이다. 세월이 비껴가는 박주미와 예능에서 쭈구리 캐릭터인 박명수가 부부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박명수와 박주미의 케미가 장난이 아니다. 박주미는 예능 출연이 거의 없었음에도 금세 ‘용감한 가족’의 분위기를 바꿔 나갔고, 박명수를 진짜 좋아하는 듯한 연기로 연기임을 알지만, 실제인지 연기인지 혼동할 정도로 실감 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명수까지 헷갈릴 정도로 말이다.

관찰 예능이 추구하는 바가 바로 그런 멤버들이다. 진짜인 듯, 진짜 아닌, 진짜 같은 배우 말이다. 정글의 법칙에서 키덜트의 모습을 보여주며 야한 모습으로 1회 만에 주목받은 이성재는 정말 그럴까? 우리가 봐 왔던 영화나 드라마 속의 캐릭터 중 하나는 아닐까. 이런 의심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스스럼없이 잘 적응하고 캐릭터를 만들어나간다. 배우들이야말로 요즘 예능에 최적화된 예능인인 것이다.


도화지 같은 캐릭터

그간 배우들이 예능 출연을 기피해 왔기에 배우들은 예능 연출가에게 있어서 도화지나 다름없다. 자신이 그려나가는 대로 캐릭터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배우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또한, 배우들 역시 천의 얼굴을 보여주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이런 예능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데 쉽게 적응해나가고 있다. 특히나 이런 배우를 가장 선호하는 PD는 나영석 PD다. 예능의 한 획을 그어가고 있는 나영석 사단은 유독 배우들을 좋아한다. 그 대표주자가 바로 이서진이다.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에서 파격적으로 캐스팅한 후 ‘삼시세끼’까지 그 인기를 그대로 끌고 가며 유재석과 강호동이라는 양대산맥을 넘볼 만한 캐릭터로 성장했다.

이서진은 그간 왕 역할이나 재벌 이미지가 강했고, 예능 출연을 기피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1박 2일’에서의 인연으로 미대생 캐릭터를 한번 만들어본 나영석 PD는 그때 배우의 진가를 알아본 것 같다. 그렇게 도박처럼 이서진을 꽃보다 할배에 짐꾼으로 캐스팅했고, 이서진은 툴툴거리며 프로그램이 망할 것이라 말함에도 지상파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이기며 최고 시청률을 매번 갱신해 나가고 있다.

SBS '아빠를 부탁해' 예고편


만들어가는 대로 그려지는 하얀 도화지와 같은 배우들은 연기 외에 알려진 바도 적기 때문에 사생활에 대해서도 매우 궁금해한다. 이런 점을 공략한 프로그램이 바로 ‘아빠를 부탁해’이다. ‘아빠를 부탁해’는 이경규를 제외하고 모두 중년 연기자로 구성되어 있다. 명절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단숨에 정규편성이 된 ‘아빠를 부탁해’는 조재현, 강우석, 조민기가 딸과의 이야기를 관찰 예능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다. 조재현, 강우석, 조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봐왔지만, 그 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이번에 그들이 사는 모습이 보여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고, 그들이 딸이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게 되었다. 여기에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나갈 이경규를 투입함으로 새로운 재미를 주는 예능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벌써부터 조재현과 이경규, 강석우와 조민기로 나뉘어 나쁜 아빠, 좋은 아빠로 캐릭터를 잡아가는 중이다.


예능도 하나의 연기 장르

배우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기존에 배우들이 예능에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캐릭터가 굳어져서 연기할 때 관객들이 기존의 예능 이미지로 코믹한 부분만 보려 하기 때문에 기피하는 현상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연기도 할 수 있고 캐릭터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극 중의 캐릭터와 비슷하기 때문에 평소 해보고 싶었던 연기를 예능에서는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다. 예전에는 예능에서 코믹한 부분만을 보여주어야 했다면, 이제는 망가지거나 웃기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반응하기 때문에 예능도 하나의 극 장르로 생각하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시청자들의 인식도 많이 변해서 배우들이 예능에서 보여준 캐릭터와 극 중 캐릭터를 혼동하지 않는 환경이 되었다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다.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가 사라지기 시작하고, 리얼이긴 하지만, 어떤 방송이든 그 안에 가면이 씌워져 있다는 것은 여러 사건 사고들을 통해서 민낯이 드러났을 때 알게 된다. 요즘은 정보가 워낙 빠르게 확산하다 보니 루머나 찌라시가 뉴스에 실제 사건으로 나오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다. 그런 사건이 나오는 와중에도 예능에서는 사람들을 웃기고 있고, 극 중에서는 나이스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런 괴리감들이 시청자들에게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져다주게 된 것 같다.

루머와 관련해서도 배우의 입장에서는 예능 출연을 적극 환영할 만 하다. 아무래도 사생활이 많이 감춰져 있기 때문에 배우들에 대한 루머가 특히 많다. ‘카더라 통신’을 통해 퍼져나가는 루머들은 대응을 하지 않으면 기정사실화되어 급속도로 퍼져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런 루머들도 예능 출연으로 자신의 리얼한 모습을 보여줌으로 혹은 고민 같은 것을 털어놓음으로 루머가 해소되는 경우가 있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 예고편


‘삼시세끼’의 차승원이 루머를 벗어나 새로운 캐릭터를 갖게 된 최대 수혜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루머들이 있었지만, 이번 ‘삼시세끼’의 출연으로 인해 차쉐프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또한, 과묵한 그의 성격 또한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안에 숨겨진 따뜻함도 많은 시청자들이 느낄 수 있었다. ‘1박 2일’에서의 차태현 또한 야외 취침을 통해서 배우라는 직업의 어려움과 자신의 두려움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에 대한 이해를 좀 더 넓혀갈 수 있었고, 배우는 아니지만, ‘아빠를 부탁해’에서는 이경규의 심장질환 시술을 보며 사람들을 웃기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삐에로의 슬픔에 대해서도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예능에서는 더욱 많은 배우들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벌써 ‘꽃보다 할배’에서 노년배우들이 노련하게 캐릭터를 잡아서 막강한 할배들이 되었다. 또한, 새롭게 생겨나는 예능 프로그램일수록 배우들이 더욱 많이 필요로 할 것이다. 인지도까지 쌓아갈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기에 배우들 또한 예전과 같이 기피하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예능에 출연할 것 같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양대산맥이었을 때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설왕설래가 많았다. 당시에는 예능인이나 개그맨 중에 그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예측하기도 했고,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결론이 나기도 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강호동의 뒤를 이을 예능인으로 개그맨이 아닌 배우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이서진이나 차승원, 이성재 같은 새로운 배우들이 예능의 자리를 꿰찰 시기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소셜파트너즈, 이종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