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 잘못 끼운 공기업 개혁, 이사회를 바꿔야 한다
- 신연수 동아일보 논설위원
공공부문 개혁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 첫해부터 내세운 구호다. 올해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4대 개혁, 즉 공공 노동 금융 교육 개혁에도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 공공기관 부채가 523조 원을 넘어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음을 감안할 때 공공부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가 2013년 말 처음 공공부문 개혁을 내놨을 때부터 2014년과 2015년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까지 줄곧 추이를 지켜봐온 필자의 의견으로는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는 공기업의 방만 경영이 심각하고 직원들의 복리후생이 지나쳐 부채가 많아졌으므로 개혁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다.
공기업 경영이 방만하고 직원들이 ‘철밥통’이라는 사실은 많은 국민이 공감한다. 그러나 정부는 처음부터 목표가 불분명했다. 엄청난 부채를 줄이자는 것인지, 임직원들에게 벌을 주자는 것인지…. 공기업 부채 얘기가 나오자 당장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해외 자원개발, 보금자리주택 건설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 정책 때문에 빚을 져놓고 왜 직원들을 쥐어짜느냐”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실제로 공기업 부채는 최근 5년 사이 급증했고 그 이유는 정부 정책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정부 정책으로 지게 된 부채는 분명한데 반해 방만 경영으로 인한 빚은 측정하기 어려우므로 정부가 개혁의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만약 공기업 부채 축소가 목적이라면 이처럼 임직원들을 몰아가는 방식으로 개혁을 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공약으로 공기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겠다는 것을 내놨었다. 이 공약은 공기업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취임 후엔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깎아 공기업 빚을 줄이라는 정반대 입장으로 돌아선 셈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어리둥절한 ‘정책 바꾸기’임엔 틀림이 없다. 여기에 정치권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공기업에 내려보낸다는 사실이 도마에 오르면서 정부는 개혁 추진의 정당성마저 잃어버렸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7월 취임 후 방향을 틀었다. 현오석 전 부총리 시절의 공공부문 개혁을 1단계 개혁이라고 하고 그것은 이미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1년간 24조 원의 빚을 줄이고 앞으로 5년간 1조 원의 복리후생비를 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1년 만에 공기업의 적폐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정책에 대해 ‘출구 전략’을 펴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들의 성과급이 많이 깎였다며 지난해 말 평가 상위 50%인 20개 기관에 인센티브로 월 급여의 30∼90%를 더 주기로 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마저 보였다.
최 부총리는 2단계 개혁으로 공공기관들의 중복 기능을 조정하고 임금 체계를 개편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한다. 민간 기업과 경합하거나 비(非)핵심 사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주택분양, 한국수자원공사의 택지분양, 코레일의 민자 역사(驛舍) 투자 같은 것들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토교통부가 “부처간 협의 없이 발표했다”고 반발하는 등 공기업의 수익성을 높이는 이런 사업들의 축소 폐지는 쉬울 것 같지 않다. 임금체계 개편도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데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협의를 지켜봐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공기업 개혁이 좌초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한국가스공사 장석효 사장은 수억 원대 비리 혐의로 기소됐고 한국무역보험공사 조계륭 사장도 부도가 난 가전업체 모뉴엘에서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한국전력공사의 감사는 납품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구속됐다. 낙하산 인사가 문제가 되어 내부 승진을 한 최고경영자(CEO)들까지 줄줄이 뇌물과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고, 회사 비리를 감독해야 할 감사가 금품을 받는 이런 상황은 공기업 부패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기업을 본질적으로 개혁하려면 임직원 복리후생 삭감이나 기능 조정 같은 일에 매달릴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공기업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공기업 이사회는 청와대, 기획재정부, 해당 부처에서 ‘나눠 먹기’ 식으로 내려온 낙하산 인사들이 사외이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이사들이 거대 공기업 경영을 감시할 수도 없고 할 의지도 없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공기업을 개혁하려면 이사회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대규모 공기업은 연간 매출이 수십조 원을 훌쩍 넘는다. 이들과 연관된 민간 기업들도 많다. 2012년 한국수력원자력의 수십억 원대 뇌물 수수 사건에 현대중공업의 임직원이 관여된 적이 있다. 이처럼 공기업들의 부패는 민간 기업들의 비리로 연결된다. 한국 경제 전반의 투명성을 높이려면 공기업 개혁을 멈춰서는 안 된다.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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