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덕트 (Culducts : Culture + Product) : 한국의 IT강국이지만 정작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산 제품은 많지 않습니다. 재조명하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국 제품들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의미에서 ‘한국의 컬덕트’를 연재합니다. 컬덕트는 시대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을 준 제품은 물론, 비록 판매에서 실패를 했더라도 일부 마니아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냈던 제품들도 포함됩니다.
한때, 아이리버 정말 잘 나갔습니다. 2004년도에는 매출이 4천억을 넘었고, 직원 수도 2천여 명에 달했죠. 그러나 2005년 애플이 아이팟 나노를 출시하며 모든 게 무너졌습니다. 아이리버도 이에 대응해 광고하기는 했지만 삼성, MS, 필립스 등 대기업도 밀리던 아이팟 나노에 이길 방도가 없었습니다. 속절없이 무너졌죠. 결국 아이리버는 2007년도에 회사를 매각하게 됩니다. 창업자 양덕준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요. 그것으로 1999년 창립 이후, 한국 벤처신화로 불리던 아이리버의 성공스토리는 멈추게 됩니다.
그런데 양덕준 대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이리버를 나와 민트패스(Mintpass)라는 재미있는 회사를 만든 겁니다. 그리고 1년 후인 2008년. 민트패드(Mint Pad)라는 작은 제품을 내놓습니다. 오늘 소개할 제품이 바로 이 민트패드입니다.
전혀 새로운 네트워크 기기의 탄생
민트패드는 아주 색다른 제품이었습니다. 우선 버튼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죠. 지금은 터치스크린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풀 터치스크린 제품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크기는 무척 작았고, 화면은 2.8인치였습니다. 무게도 90g 정도 그 당시 작은 휴대폰 정도의 무게였습니다.
포켓에 쏙 들어가는 이 제품의 기능은 상당히 다양했습니다. 우선 기본으로 MP3 플레이어 기능이 있었고요. 여기에 무선랜 제공, 외장 카메라, 스피커, 마이크까지 달려 있었습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앨범으로 볼 수도 있고, 동영상 촬영, 그리고 다양한 메모 기능까지 이용할 수 있었죠. 뿐만 아닙니다. 스케줄 기능, 녹음 기능, 전자사전, DMB, 텍스트 뷰어, 지도, 지역 정보....
아직도 끝이 아닙니다. 민트패드 사용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미니 블로그 서비스와 채팅 기능 까지 제공했습니다. 민트패드 사용자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던 거죠.
이 모든 내용을 종합해 보니 어떤 제품이 연상되시나요? 맞습니다. 스마트폰입니다. 민트패드는 스마트폰이 지원하는 기능을 상당 부분 제공하는 신개념 네트워크 기기였죠.
민트패드는 상당히 야심 찬 프로젝트였습니다. 단말기는 저렴하게 배포했고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저변을 확대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민트패드의 제작사 민트패스는 한 달에 한 번 펀웨어(Funware)라는 재미있는 업그레이드를 지원했습니다. 이 업그레이드를 통해 없던 기능이 새로 생기고, 사용자들은 높은 만족감을 나타냈죠.
시대를 앞선 불운의 제품
민트패드는 그 당시까지 한국에서 유행하던 PMP와 PDA, MP3 플레이어를 종합한 멀티미디어 기기였습니다. 그리고 원시적인 수준이지만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실시간 채팅, 전자출판, 게임까지도 지원했죠.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아이리버 시절에도 경쟁자였던 애플은 IT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기로 꼽히는 아이폰을 2007년 공개하며 완성형에 가까운 제품과 수 십만개의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했습니다. 사실 제품의 차이도 컸지만 더 문제는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수십 년간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오고 전세계 개발자들과 같이 움직이는 애플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죠. 결과적으로 민트패드는 일부 매니아에게만 팔린 채, 두 번째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쓸쓸히 단종됩니다. 후에 들은 얘기인데, 민트패드는 원래 기획한 기능의 1/10도 구현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사실 민트패드는 국내 제조업에서는 이례적인 제품이었습니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에 더 포커싱이 된 제품이었죠. 하드웨어를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만드는 것에 있죠. 민트패스는 민트패드를 통해 이런 서비스 구현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해외에 아이폰이라는 더 멋진 제품이 있었고, 소프트웨어를 유료로 이용하는 개념도 적었습니다. 민트패드는 팔면 팔수록 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꿈꾸며-
훗날 민트패드를 만들었던 양덕준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그 당시 어려움을 회고했습니다. 민트패드의 가능성을 알아본 대기업들이 다수 접촉했으나 대부분 일방적인 제휴관계를 원했다는 겁니다.
양덕준 대표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휴대폰 기술이 민트패드와 결합했다면 한국이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훗날 출시된 아이패드나 아이폰의 상당 기능이 민트패드와 유사했고, 민트패드가 제공했던 서비스 역시 오늘날의 전자북 서비스나 채팅 서비스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민트패드는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세계는 소프트웨어 경쟁으로 돌입했습니다. 하드웨어만 강조했던 국내 산업이 최근 위기에 빠진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1년간 '한국의 컬덕트' 코너를 연재하면서 느낀 것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이번에 소개한 민트패드처럼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이 아쉽다"는 것입니다. 좋은 아이디어와 놀라운 콘셉트를 가진 제품도 자본력이 부족하거나, 큰 시장을 얻지 못해 기회가 사라진 제품이 너무나 많습니다. 만약 그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힘을 합칠 수 있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요?
이제는 글로벌 시대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든 제품은 전 세계의 수많은 제품과 경쟁해야 합니다. 같은 나라에 있는 소중한 아이디어와 혁신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세계와의 경쟁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자그마한 바람이지만 앞으로 중소기업의 아이디어와 대기업의 기술력이 잘 합쳐진 세계적인 컬덕트가 많이 기획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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