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민주화 법안 중 하나로 회사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개정 논의가 활발합니다. 현행 상법상 개별 회사 선택에 맡기던 집행임원제도와 집중투표제도, 그리고 전자투표제도 의무화,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와 일반 이사의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이 그것입니다.
아마도 언론을 통해 많이 들어보셨을 용어일 겁니다. 최근에는 대통령까지 이런 상법개정에 대해 언급할 정도니 우리 사회에서 상법개정이 중요한 이슈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상법이 국민적 관심사였던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상법개정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상법개정이 이렇게 국민적인 관심사가 된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이번 상법개정 사항 중 ‘집행임원제’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와 일반 이사 분리선출’이 회사의 뇌(腦)를 건드릴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출처:이미지투데이)
회사는 우리처럼 ‘자연인(自然人)’은 아니지만, 법적으로는 하나의 사람처럼 취급되는 ‘법인(法人)’입니다. 사람은 머릿속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손과 발을 움직여 실행에 옮깁니다. 이때 충동적이고 감각적인 사고는 우뇌가, 이성적이고 논리적 사고는 좌뇌가 담당합니다. 서로 통제하고 조화를 이루며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의 중요한 업무 결정은 이사회에서 합니다. 이사회가 회사라는 법인의 ‘뇌(腦)’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회는 적극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업무집행을 결정하는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이들의 업무집행을 주로 감독하는 사외이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의 하부조직인 감사위원회에 소속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배주주가 이사회를 지배하며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집행을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번 상법개정안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선임방법을 규제해, 되도록 지배주주의 입김은 줄이고 소수주주의 권한은 강화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이 될 이사의 분리선출’이 바로 이런 규제입니다.
집중투표제란 이사 선임 시 한주에 대해 임하려는 이사의 수만큼 복수의결권을 부여하는 투표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5명의 이사를 선임 한다면 1주에 5개의 의결권이 부여됩니다. 이럴 경우 지배주주는 물론 소수주주들도 상당수의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사후보자 1인 또는 수인에게 집중해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소수주주들을 대표하는 한두명정도의 후보자들을 이사로 선임할 수 있게 됩니다.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지배주주도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 모두를 이사회에 진출시키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언뜻 보기에는 다수의 횡포를 막을 수 있고 민주주의 이념에도 부합하는 것 같아 상당히 합리적인 제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소수주주들의 지지를 받으며 선임된 이사들이 모든 주주와 회사 전체의 이익이 아닌 자신들을 지지해준 일부 소수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등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집중투표제를 강제화하는 나라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정치영역에서의 민주주의 이념을 회사 영역에도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결국, 주주총회에서 이사들을 선출할 때는「집중투표제」때문에 소수주주들이 지배주주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해집니다.
그리고 개정안에서는 이사회의 하부조직인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 선출 시 일반이사와 분리해 별도로 주주총회에서 선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주주총회에서 모든 이사를 일괄선출하고 선출된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총회에서 다시 감사위원회 위원이 될 이사를 선출합니다. 그리고 이때 지배주주는 아무리 많은 의결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지배주주로부터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애초에 모든 이사들을 일괄선출할 때는 지배주주가 3% 의결권 제한을 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모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지배주주가 선호하는 후보들이 이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이사들을 상대로 감사위원회 위원이 될 이사를 선임할 때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현행법으로는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확보가 미흡하다는 것이 개정안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에서는 일반 이사와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애초부터 분리해서 주주총회에서 선출하고 후자의 선임 시 지배주주의 권한을 3%로 제한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선임할 때 지배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돼 지배주주로부터 독립된 감사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같이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궁극적으로 소수주주의 입장을 대표할 이사의 선임 가능성은 매우 커지지만 지배주주가 선호하는 이사 후보자의 선임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상법에 따르면 감사위원회 위원은 3명 이상이어야 하고 그중 2/3이상은 사외이사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외이사가 전체 이사의 과반수를 넘어야합니다. 감사위원회는 대부분 사외이사로 채워질 것이고 감사위원회 위원이 아닌 사외이사도 존재할 것입니다.
일반이사와 감사위원이 될 이사 선임 시 지배주주의 권한을 제한하며 사외이사 위주로 선임하도록 하려는 것은 지배주주로부터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며 지배주주를 감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감시기능을 강조하면 현재의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중심의 업무집행기능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이사회는 업무집행의 감독에 주력하고 업무집행은 별도의 기관인 집행임원이 전담하도록 한 것이 집행임원제 의무화입니다. 그리고 집행임원은 이사회에서 선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회는 이미 지배주주의 권한이 상당히 제한된 상태에서 선임된 사외이사들로 상당수 채워져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사외이사들이 실질적으로 경영을 담당할 집행임원을 선임하게 됩니다. 현재처럼 지배주주가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하고 이러한 이사 중심으로 자신의 경영철학을 공유하는 경영진을 구성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특히 개정안에서는 이사회 의장(Chair man)과 대표 집행임원(CEO)이 서로 겸임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대표이사 중심의 원톱(one top) 체제에서 투톱(two top) 체제로 리더쉽 구조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오너경영체제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축구에서 원톱과 투톱 전술 중 어느 것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까요? 어느 것을 사용할지는 개별 팀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항상 투톱 시스템으로 축구를 하라고 한다면면 과연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사진출처:이미지투데이)
이렇게 이사회 구조(집행임원제)와 이사의 선임방법(감사위원 분리선출+집중투표제)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개정안은 이사회라는 하나의 뇌 속에 있는 좌뇌(사외이사 중심의 업무집행감독)와 우뇌(사내이사 중심의 업무집행)를 엄격히 분리하여 후자의 기능을 집행임원이라는 별도의 기관으로 이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회라는 법인의 뇌 속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혈관(이사의 선임방법)을 규제하여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사회 독립성 확보를 위한 이러한 방법이 이사회 독립성 못지않게 중요한 (지배)주주의 이사 선임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주들은 이사 선임권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주주들의 이러한 권리는 주식회사제도의 본질입니다. 물론 이사회의 감시기능과 독립성 확보가 절대불변의 진리라면 (지배)주주의 의결권이라는 재산권을 제한하여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도 어느 정도 타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회는 감독기능을 전담하고 업무집행은 별도의 집행임원들이 수행하는 구조가 업무집행과 업무감독을 이사회라는 하나의 기관에서 담당하는 구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확실히 뒷받침해 주는 실증연구는 없습니다. 개별기업의 특성과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개별 기업들의 선택에 맡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배주주로부터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사회-집행임원’구조를 강제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옳은 방법일까요? 이사회 구조를 원톱 구조로 할 것인지 투톱 구조로 할 것인지는 개별 기업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한 것 아닐까요?
결국 이번 상법개정의 근저에는 지배주주 중심의 오너경영체제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너의 권한남용에 대한 우려 때문에 지배주주의 권한을 제한하고 소수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주주의 권한강화가 항상 지배주주의 권한남용을 통제해 회사가치를 증진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지나치게 시세차익을 통한 단기이익만을 추구하는 일부 투기자본이 강화된 소수주주권을 악용해 회사의 지속적 성장을 훼손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이러한 단기이익추구가 지적되는 것만 보더라도 그 위험성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의 회사지배구조 개혁의 목표는 경영자의 단기이익추구 성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로 모이고 있습니다. 장기적 성향의 기관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경영자를 감시하며 경영자의 단기 실적주의를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장기적 성향의 기관투자자들의 참여를 기대하며 주주의 권리를 강화할 경우 대부분의 단기적 성향의 소수주주들도 이러한 주주의 권한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단기 실적주의를 부추기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식 보유기간에 따라 차등적으로 의결권을 부여하자는 대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주식 보유기간이 길수록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더 높을 것이므로 장기적 보유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자는 것입니다. 특히 가족기업에서의 지배주주들은 회사의 장기적 성장에 관심을 가지며 충성도가 높으므로 금융위기 이후 오너경영체제의 장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법개정은 이러한 세계 각국의 지배구조 개혁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사회 구조와 이사의 선임방법을 제한하며 오히려 오너경영체제를 점점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지배주주의 권한남용은 당연히 막아야 합니다. 문제는 방법입니다. 지배주주와 소수주주는 모두 주주이기 때문에 상당 부분 이해관계가 일치합니다. 불일치하는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일반화시켜 규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일치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일감 몰아주기를 비롯한 부당한 계열사간 거래입니다. 지배주주가 자신의 지분이 많은 계열사에게는 이득이 되고 적은 지분을 가진 계열사는 손해를 보는 조건으로 계열사간 거래를 하는 경우가 전형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래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공정거래법과 회사법, 세법 등에서 강력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6월 국회에서는 계열사간 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공정거래법 개정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회사지배구조를 다루는 회사법에서까지 무조건 지배주주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것은 모든 주주들이 공유할 수 있는 지배주주의 장점까지 포기하는 것입니다. 지배구조 영역에서만이라도 오너경영체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안정된 경영권을 바탕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할 수 있는 기업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인 일자리 창출과 재투자, 중소기업과의 상생은 주주들의 단기이익추구와 지나친 배당요구를 어느 통제할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창조경제를 위한 창조와 혁신, 그리고 이를 제품화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이러한 시간을 참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자본(patient capital)이 필요합니다. 요즘 창조경제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주목받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포터(Porter)교수가 장기적 주식보유자인 지배주주들이 일반 주주들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회사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금융위기 이후 오너경영체제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상법개정을 통해 지배주주의 권한을 직접적으로 제한하여 오너경영체제를 어렵게 하려고 합니다.
(사진출처:이미지투데이)
회사도 우리와 같은 인격체(法人)입니다. 이사회라는 뇌(腦)를 가지고 있고 우뇌와 좌뇌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회사의 체질은 주로 ‘오너경영체제’입니다. 물론 이러한 뇌 구조와 체질을 가진 회사가 항상 건강한 것만은 아닙니다.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집행임원제를 강제로 도입해 우뇌와 좌뇌를 엄격히 분리하고,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임을 강제하여 지배주주의 선호가 뇌혈관을 통과하는 것을 막아 오너경영체제라는 체질을 아예 바꿔버리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치료방법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뇌 수술방법으로 환자를 뇌사상태에 빠뜨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신석훈 박사(한국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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